4. 마지막은 가장 마지막으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내 새끼 눈물 한 방울은 나에게 홍수와 같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대신해 본인이 아팠으면 한다는 말들을 흔하게 들었다. 그 말이 가진 무게를 머리로는 알았으나, 마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우리는 종이 다른 아이들을 품은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한 자 한 자 피부로 깨닫는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시간과 생명을 나누어주고 싶을 만큼 절실하게.
4-1.
주변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오던 친구들에게서 아이를 보낸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도 있고, 아직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린아이도 있었다. 이별은 방식과 상관없이 슬프고, 시간에 쌓인 기억은 아무리 되짚어봐도 고통스럽기만 하다. 가슴속에 평생 그 작은 생명을 묻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벌인 것만 같다. 혹은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에 대한 대가인 것도 같다.
해피를 데리고 매년 건강검진을 가는 순간들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보다 훨씬 건강한 아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나왔으나, 이제는 건강검진 후에 약을 처방받는 일이 흔해졌다. 피부에 쉴 새 없이 혹과 염증이 생기는 것도, 담낭에 슬러지가 쌓이는 것도, 눈이 조금씩 혼탁해지는 것 모두 노화 때문이라고 했다. 마땅한 치료방법이 따로 있는 병이 아니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느냐고 묻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다.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그렇게 묻고야 만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나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는 수의사의 면담은 언제나 멋쩍은 웃음으로 끝이 났다.
*
근래에 양치를 부쩍 싫어하기 시작한다 했더니 해피의 앞니 중 하나가 뿌리가 반쯤 드러날 정도로 상해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되도록 수술대 위에 오르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해피는 하루가 다르게 이곳저곳에 내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증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발치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나빠진 곳이 있다면 당연히 정기검진을 받으며 보조제를 먹고 있는 담낭 쪽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치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상해버린 치아가 어떻게 더 나빠질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미루기에 해피의 나이는 충분히 늦었다면 늦은 때였다. 건강검진으로 받은 피검사가 유효한 시간은 고작 나흘. 삶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수술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정답을 가르쳐주길 바랐지만, 생명 앞에 정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하루를 남기고 결국 나는 발치를 선택했다. 수술을 결정한 날, 알음알음 찾아본 얕은 지식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의 수술 방식을 요청했다. 해피를 들려 보내면서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면 어떡하지. 내가 우리의 시간을 섣부르게 앞당기는 선택을 했다면 너에게 남겨진 시간을 앗아간 나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믿어야 했다. 나의 선택과, 너를. 해피는 이렇게 쉽게 나를 떠날 리 없으니까. 내 새끼는 우주 최강 강쥐니까.
괜찮을 것이라 다짐을 했던 나와, 버티는 시간의 나는 다른 시간을 걷는다. 감정은 쉴 새 없이 널을 뛰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좌불안석이 되어 동거인과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수시로 억눌렀다. 수술이 끝나기로 예정된 시간이 되었으나 병원으로부터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래, 조금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 수술이 조금 늦게 시작했을 수도 있고, 수의사가 바빠서 수술을 끝내고 전화를 잊었을 수도 있고. 예상시간이 지나고나서부터는 온갖 변명을 갖다 붙이며 스스로를 달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결국 예상시간보다 40분이 더 지났을 무렵, 나는 참지 못하고 병원으로 먼저 전화를 걸었다.
[ 해피 보호잔데요, 수술 끝날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연락을 못 받아서요... ]
나름 덤덤하게 말을 했지만 답을 기다리는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덜덜덜 떨어댔다. 금방이라도 전화기가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았다. 담당의사에게 전화가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얼마나 많은 최악의 수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 안 그래도 지금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수술은 잘 됐고, 해피는 깨어나는 중입니다. ]
해피는 생각보다 더 안정적으로 수술을 마쳤다고 했다. 수의사는 해피의 치아뿌리가 중형견처럼 깊어 예상보다 수술이 길어지는 탓에 연락이 늦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 시간 후에 아이를 데리러 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탈진한 사람처럼 거실 바닥에 드러눕고, 동거인은 눈물을 보였다. 수술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기울였던 제 선택이 해피를 상하게 했을까 봐 덩달아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애간장이 몽땅 녹아내린 2시간이었다.
*
그 후로 평안한 일상을 보냈나 하면, 그건 아주 찰나였다. 해피의 병원생활이 다시없길 바랐던 마음과 달리, 해피의 시간은 이제 나보다 더 큰 걸음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24년 10월, 추가로 신부전과 심장병 1기를 판정받았다. 처방식을 이어가던 과정 사이에 무지한 나의 실수로 한 번의 고비를 넘긴 해피는 이제 매일 약을 먹고, 추가로 피하수액도 시작했다.
약간의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해피의 병명을 듣고 나서부터 더 예민하게 해피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루에 단백질은 체중에 맞게 10~11g을 넘지 않도록 화식과 시판 습식을 섞어 조절한다. 너무 추운 날엔 구태여 산책을 하지 않고, 며칠 만에 나갔다 오는 길에 한껏 흥이 올라 뛰고 싶어 하는 너를 서둘러 끌어안는다. 아직도 다섯 살처럼 뛰어놀고 싶어 하는 해피를 보면, 아직은 우리의 시간이 오래 남은 것 같아 조금은 안도가 된다.
하지만 이런 나의 극성스러운 보살핌에도 해피의 건강은 계속해서 어두운 곳을 향해 걸었다. 어느 오후부터 기침이 심해진 다음 날, 가파른 숨을 쉬던 해피는 심인성 폐울혈로 또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연명치료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싶어 나는 조심스럽게 담당 수의사에게 물었다.
"보통 병이 이 정도면... 수명이 어떻게 되나요?"
집에 산소발생기 같은 것도 준비해야 할까요? 나름 차분하게 뱉은 말이 귀로 되돌아오는 순간 눈물이 뜨겁게 차올랐다. 씩씩한 보호자이고 싶었는데. 여태 애써 부정하고 있던 해피와의 마지막이 갑자기 눈앞에 정확한 형태를 갖고 나타난 것만 같았다.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틀어막으려 애쓰는 나를 보며 수의사가 급하게 휴지를 내밀었고, 드물게 당황한 그의 말은 조금 빨라졌다.
"아직 괜찮아요, 보호자님. 아직 그런 거 생각할 단계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이 정도면 괜찮아요."
수의사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빠르게 다시 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놓았다. 이번엔 다행히 증상 초기에 빠르게 병원을 찾아 하루 만에 회복이 되었지만, 해피는 병원을 한 번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를 꼬박 잠에 빠져 지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가끔 해피가 영원히 그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잠들어있는 해피의 호흡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할머니의 나이가 된 해피는 고단한 잠을 달게 잘 뿐이었다.
이따금 지난날 나의 실수가 후회스럽고, 너의 고통 하나하나가 모두 내 탓인 것 같다.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너의 즐거움을 앗아, 내 마음의 안식으로 쌓아 올리는 이기적인 보호자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기로 했다. 나는 해피에게 있어 영양사고, 간병인이고, 산책파트너이며, 그 생을 지탱할 의무가 있는 너의 보호자니까. 이것 또한 해피와 함께 이겨내야 할 일이라면 나는 씩씩하게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순간에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기로.
그러니 너도 언제든 괜찮았으면 좋겠다. 전보다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시시 때때로 기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너에게 계속해서 담기기를 바란다.
4-2.
어느 겨울 시작된 모찌의 귓병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심해졌다. 약을 써도 다시 지저분해지고, 소양증까지 있는지 긁다가 눈썹 위로는 상처도 났다. 병원을 다니며 아무리 약을 발라도 그때뿐이었다. 나아지는 것 같아서 약을 줄이면 다시 악화되길 반복했다. 그 지지부진한 병은 해를 넘긴 뒤에도 다시 재발을 일삼았다. 그러다 나중엔 귀 가운데에 동그랗게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귓병으로 시작한 병이 결국 링웜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링웜은 곰팡이성 질병으로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전염이 쉬운 피부병이었다. 보편적으로 링웜은 완치까지 3주에서 4주의 시간이 걸린다. 현실적으로 다른 아이들을 격리하여 치료할 처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누구도 옮지 않고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그 맘쯤 귓병이 알레르기에서 기인한 증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우리는, 원인분자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아이들 사료부터 인간이 쓰는 침대 매트리스까지 모두 갈아치우며 입주청소를 방불케 하는 전쟁을 치렀다. 다행히 그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찌의 여러 증상들은 점차 호전되었다. 바꾼 사료를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병과 씨름을 하며 약을 먹이던 4주 차가 되던 때에 문제가 시작됐다. 링웜과의 씨름도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모찌의 식욕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르고 달래며 습식을 섞어도 주고, 간식을 섞어도 주었지만 먹는 양이 예전만 못했다. 처음엔 바뀐 사료가 싫어서 부리는 밥투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저 약을 잘 챙기면 빨리 낫겠거니 싶어, 싫어하는 모찌를 붙들고 아침저녁으로 그 독한 약을 참 부지런히도 챙겨 먹였다.
원래도 모찌는 종종 아침이 늦어지면 공복토와 헤어볼 토를 곧잘 했었다. 그래서 그날의 구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틀 내내 이어지는 식사거부와 공복토의 양상은 충분히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공휴일 전날 연차를 미리 내두었던 시기여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곧장 24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저 약이 힘들어 내놓는 투정이길 바랐다. 우리의 지나친 염려로 끝나는, 흔했던 날 중의 하나이길 정말 간절하게 바랐다. 그 마음이 간절했던 이유는 한편으로 떠오르는 불안한 기분을 쉽게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찌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바로 입원시키셔야겠어요."
진료실에서 마주한 담당수의사의 표정이 본 적 없이 심각했다. 모니터로 보이는 혈액검사서 중 몇 가지 지표가 표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진단명은 급성간염. 병원에서 측정 가능한 수치를 훌쩍 넘어 간수치는 명확한 숫자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너무 단숨에 나빠진 상태라 가능한 간 보호제와 영양제를 모두 쏟아붓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치료를 위해 했던 우리의 행동이 모찌의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었다고 생각을 하니, 돌아본 모든 시간이 하나하나 후회로 물들었다. 왜 그렇게나 열심히 약을 먹였을까. 밥을 넘기지 못하던 순간들을 왜 투정으로만 여겼을까. 바보같이 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까.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작은 아이를 병원에 두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서로를 다독이면서도 우리는 가죽만 남은 사람처럼 속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급성간염에 관한 사례를 찾아볼수록 눈앞이 캄캄해졌다. 확률상 생사는 거의 반반에 가까웠고, 간염에서 간부전으로. 간부전에서 간경화로 이어지면 더 이상 간이 회복의 순환을 이어갈 확률이 희박하다고 했다. 모찌는 이제 겨우 6살인데. 그 작은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동거인을 다독이며 나는 애써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한 줌만 한 아이가 아직 살아있고, 열심히 버티고 있을 텐데. 우리는 그 작은 아이의 우주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로서 결코 약해질 수 없었다. 모찌가 숨을 쉬고 있는 한, 아직 슬퍼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남아있는 아이들의 밥을 챙기며 침전된 시간을 애써 일으켰다. 그러고 나니 검사 때문에 모찌가 아침밥을 거른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계속된 구토 때문에도 속이 비어있을 텐데. 극성인 보호자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점심때가 되었을 무렵,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굶었으니 모쪼록 끼니를 챙겨주십사 부탁드리려던 차였다.
[ 모찌 아침도 안 먹었나요? 큰일이네... 지금 밥도 물도 안 먹어서요. 괜찮으면 보호자님 오셔서 직접 아이 밥 좀 먹여주실 수 있나요? ]
담당 수의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저녁면회를 허가해 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입원 당일, 주말 면회는 규정상 불가했으나 모찌의 예후가 좋지 않아 특별히 허가해 준 것이었다.) 병원에 부랴부랴 찾아간 우리는 입원실에 있는 모찌를 보자마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다시금 터졌다. 몇 시간 되지 않은 그 사이에 모찌의 얼굴이 수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커다란 넥카라는 숨이 막히고, 겨우 손가락만 한 팔에 놓인 주삿바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내 살갗이 아팠다. 하루종일 배고프고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낯설고 불편한 곳에 저 혼자 두고 간 인간이 야속하지도 않은지 모찌는 우리를 보자마자 입원실 유리로 다가와 턱을 부벼댔다. 밥도 물도 먹지 않았다던 모찌는 마치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손으로 덜어내주는 사료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동안 넥카라를 풀어주었더니 물도 제법 잘 마시고는 작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모찌한테 우리는 꽤 신뢰받는 인간임에 틀림없었다.
"살겠다. 우리 애기 살겠어."
그제야 우리의 숨통도 조금 트였다. 돌아온 수의사를 붙들고 깨끗이 비운 밥그릇을 자랑했다.
"저희가 주면 안 먹던데. 보호자님 괜찮으시면 매일 오셔서 모찌 밥 좀 먹여주세요."
의사의 권유가 고맙게만 느껴졌다.
*
매일 아침마다 모찌의 피검사 결과를 유선상으로 전달받았다. 간부전의 문턱까지 갔던 모찌의 간수치는 다행히도 입원 한 이튿날부터 측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그마저도 정상수치보다는 몇 백배가 되었음에도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세상 그 어떤 일보다 희소식이었다. 매일 저녁 퇴근을 하고 왕복 한 시간 거리를 우리는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겨우 10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매일 절반씩 뚝뚝 떨어지던 수치가 하루는 다시 치솟아서 걱정을 했으나, 입원이 길어지면 스트레스 때문 에라도 큰 회복을 기대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입원 닷새째 되는 날 우리는 퇴원을 요청했다. 아직도 간수치가 1000을 크게 웃돌았으나, 병원에서도 이제 모찌에게 위험한 시간은 멀어졌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수치 보고 지금처럼 회복이 유지되면 퇴원하시죠."
우리는 모찌에게 내일은 꼭 집에 가자는 인사를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을 약속받고 돌아와 누운 잠자리에 안도감이 자리했다. 다행히 모찌의 간수치는 다음날 다시 절반으로 줄었고 우린 기쁜 마음으로 퇴원절차를 마쳤다. 병원에서 매일 하는 피검사로 한껏 예민해져 있던 탓에 여태껏 본 적 없는 날카로움을 잠시 선보였지만, 그때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모찌는 내려놓자마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병원에서 이루지 못한 잠을 몰아서 자기라도 하듯 우리의 냄새가 배어 있는 옷장에 찾아들어가 깊게 잠이 들었다. 우린 모찌의 잠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3.2kg짜리가 가져다주는 평화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입원으로부터 꼬박 두 달이 되던 날, 모찌는 기특게도 완치판정을 받았다.
세상이 무너져도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겨울철 따끈한 아이들과 얼기설기 누워있는 침대를 벗어나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퍼지게 늘어져있고 싶지만, 현실과의 타협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 여섯 개를 뒤로하고 삭막한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매일이 도전이고, 고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른답게 두꺼운 옷을 여미며 차디찬 현관 밖으로 향한다. 그것이 이 작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수단임을 알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현실에서 혹독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아이들의 포근한 털에 얼굴을 파묻으면 그간의 피로는 온 데 간 데 없다. 대체 이 작은 아이들은 어떻게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걸까. 그 작은 몸으로, 눈빛으로 어떻게 인간들을 마음껏 휘두르며 어떤 일이든 해내게 만드는 걸까.
사실은 우리가 너희를 지키는 게 아니라, 너희가 우리를 지켜내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