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by 김여생

산책을 나갔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사투리가 뭉텅뭉텅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사투리다.

경상도분들인 것 같은데 어릴 땐 저 사투리 억양이 굉장히 격하게 들릴 때가 있었다.

뭔가 다투는 건가? 싶은데 정다운 대화를 하는 중이라 해서 오오 신기하다 한 적이 있다.

(부산친구와도 처음 서로 다름에 신기해했다.)

나는 일하다가 머리가 복잡할 때면 홀로 휙 하고 부산으로 종종 떠났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바다는 항상 푸근함 준다.

창을 열면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파도소리만이 들리는 숙소에서 하루 종일 멍을 때리다가 모래사장에도 앉아있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올라오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겨울이었고 살짝의 번아웃이 왔고 연차를 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아 가야겠다 싶었다.

예약도 안 하고 주섬주섬 물건만 챙기고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다.

그렇게 ktx를 타고 부산다를 마주한다.

파아란 하늘에 하얀 햇빛이 바다에 스며들지 못하고 물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날.

숙소도 정하지 않았지만 무작정 바다를 거어본다.

'숙소를 못 구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뭐.'

'근데 나 하나 잘 수 있는 숙소가 없을까?'싶은 마음에.

잠옷과 세면용품만 들어있는 배낭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다.

식사시간을 놓친 것도 모른 채 그저 평온한 바다만을 감상하다가 배에서 꼬르르르륵 소리에 놀버렸다.

그러고 보니 물도 마시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꼬르륵 소리가 나면 배고픔을 인지하게 되서 갑자기 엄청난 허기가 찾아온다.

나는 그냥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다 생각하다가 '그래도 겨울이고 바다를 왔는데.' 하며 횟집을 찾는다.

점심이 훌쩍 넘은 애매한 시간에 들어가니 손님은 아무도 없다.

'식사될까요?' 물어본다.

'혼자예?' 아주머니가 묻는다.

'네 혼자예요.'

'2층으로 올라가세요.'

네-조용히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는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1,2층이 있는 꽤나 넓은 횟집이다.

좌식에 비닐이 다 깔려있고 단체석 같은 곳에 앉으라고 하는데 뭔가 여기서는 회모둠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간단한 식사를 하러 온 게 조금 눈치가 보인다.

'회덮밥 하나 주세요.'

'서울에서 왔어요?'

'네.' 아주머니의 말투가 퉁명스럽게 느껴진다.

'회덮밥 하나!'

아무도 없는 긴 복도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쉬는시간일텐테 내가 너무 애매한 시간에 왔나 보다.

얼른 먹고 나가야겠다 하며 기다려본다.

회덮밥이 나왔는데 반찬가짓수가 굉장히 많다.

회를 시켜야 나올만한 반찬들도 나온다.

역시 회는 바닷가 근처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주머니가 쟁반을 옆에 두고 앉는다.

'왜 혼자 왔어요?'

(사투리를 잘 몰라서 표준어로 써봅니다. 아주머니는 엄청 진한 부산사투리를 사용하셨어요.)

'네? 아 바다가 보고 싶어서요.'

'아니 애인이 없어? 혹시 헤어지고 온 거야?'

말투가 강하셔서 취조받는 느낌이 들었다.

'네 없네요 하하.' 웃으니 아주머니는 계속 질문을 한다.

'여자가 혼자 바다 볼 일이 잘 없잖아요.'

'서울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대?'

'잘 먹고 다녀야지 이 시간까지 밥을 안 먹으면 쓰나.'

회덮밥 한 그릇을 먹는 와중 쉴 새 없이 얘기하시는데 뭔가 혼이 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대화하며 먹고 있는데 '이 반찬 더 줄까?' 하며 잠깐만 하시더니 반찬을 더 가지러 가셨다.

나는 이때 깨달았다.

'아, 지금 나 혼자 밥 먹는 거 외로울까 봐 옆에 있어주시는구나!'

서울에서 혼자 온 여자애가 신기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이어갈 얘기가 없어도 계속 이야기하며 쳐다보신 게 내가 혼자 외로울까봐였다.

사투리가 강해서 그렇지 질문들도 다 나를 걱정해 주는 질문뿐이었다.

아주머니의 예쁜 마음이 사투리에 가려져 내가 잘 못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나 너무 감사하잖아.

그날 아주머니께 사투리를 조금 배웠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어조가 강해서 다투는 것같이 들릴 때가 있다고.

아주머니는 나의 말투가 사근사근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화와 싸울 때의 차이도 알려주셨는데 잘 모르겠으면 표정과 몸짓을 보라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지금은 고 '대화중이구나.' 한다.

밥 먹는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가족관계와 알짜배기 여행코스까지 얘기했다.

나와의 대화가 즐거우셨는지 내가 다 먹고 가려하니 1층까지 내려와 배웅도 해주시며 명함도 손에 쥐어주셨다.

그러고 보니 그 뒤로 다시 찾아가질 못했다.

정말 감사하고 즐거웠는데.

갑자기 새 식구인 고양이가 생겼고 코로나가 터졌고 몇 년이 호라락 지나가버렸다.

아주머니 덕분에 이젠 사투리가 정겹다.

사투리는 강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따뜻했던 아주머니.

부산에 가게 되면 꼭 다시 한번 그 집에 들러야겠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12화콩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