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간단히 맥주 약속이 있었다.
나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기에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실 예정이었으나 약속 세 시간 전,
취소되었다.
감기가 심하게 왔다며 다음 주에 보자는 문자가 와 있다.
코로나가 재유행 중이라 이해하지만 그래도 당일 취소는 전화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핸드폰을 보고 있어 다행이었지 안 보고 있다가 출발하고 봤으면 참 낭패였을 것이다.
(집에서 핸드폰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저녁약속이 없어졌으니 산책을 나가본다.
친구가 한 명 있다.
나와 시간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꼭 약속시간에 10분에서 30분 정도 늦는다.
몇 번의 약속 이후 그냥 친구 집 근처에서 보기로 한다.
매번 늦을 걸 아니까 아예 친구 집에 가서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행동을 보면 딱히 준비할 것이 없는데 왜 늦을까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저 묵묵히 기다린다.
(화장이나 꾸미는 것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친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시간을 정하고 늦을 것 같아 그 친구 동네로 갔으나 30분이 넘도록 나오질 않았다.
친구 집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언짢았다.
친구에게 연락했다.
'언제 나올 수 있어? 더 늦으면 난 집에 갈게.'
친구가 메시지를 보지 않는다.
그 길로 집으로 왔다.
나왔는데 어디냐는 친구의 메시지에 집에 가고 있다 얘기했다.
계속 전화가 왔지만 '나중에 보자.' 말 한마디만 남긴 채 더 연락하지 않았다.
서로 성인인데 이러쿵저러쿵 너의 잘못은 이거라며 따지거나 비난의 말은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게 그렇게 기분이 나쁠 일인가 생각한다.
그 친구가 약속을 늦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내가 화가 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친구에게 시간의 느슨함을 지적해야 할까.
이 친구와 만나지 않고 연락만 주고받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늦을 때마다 매번 진심으로 사과하는 친구이기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 결과,
친구와 같이 행동해 보기로 했다.
1시에 약속을 하면 1시 15분까지 도착하면 되는 거다.
약속을 했으면 10분 전에 가 있는 것이 좋지만 인생사 모든 것이 딱딱 알맞게 돌아가지 않으니 융통성을 발휘해 본다.
서로 늦으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약속시간에 조금씩 늦게 나가 보았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 때도 있고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릴 때도 있게 되었다.
하루는 지하철에 문제가 생겨 내가 거의 30분 넘게 늦은 날이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며 연신 미안하다고 얘기하는데 친구는 말한다.
'괜찮아. 날씨가 엄청 화창해서 산책하기 좋아.'
이런 사람이다.
삶 자체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친구다.
이래서 이 친구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시간의 개념이 다른데 틀린 건 아니니까.
서로 한 번씩 지각하는 상황이 생기니 더 이상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니 친구가 기다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을 맞춰오기 시작했다.
왜 바뀌었을까 싶지만 묻지 않는다.
나를 반면교사 삼았을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이젠 나도 다시 약속시간 10분 전에 가지만 살짝 아쉬울 때가 있다.
'조금씩 야금야금 지각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지.'
이제 내가 지각의 맛을 알아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