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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Dec 30. 2017

우리 모두가 가장 훌륭한 악기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2주 연장 공연

왜 그리운 것들은

내 발자국 뒤에서 서성거리는지 

서성거리다 내게로 오는지

비틀거리는지 

비틀 거리다 내게로 오는지

- 이지상의 <왜 그리운 것들은> 중에서


누적 관객 10만 명을 넘었다. 바로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하 ‘바람’)이다.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뮤지컬 ‘바람’은 2018년 1월 21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2주간 연장 공연에 돌입한다. 


필자는 2012년 12월 초연(대구 떼아뜨르분도 소극장)을 관람하고, 지난 12월 26일(목) 다시 김광석과 우리들을 추억하기 위해 대학로 예그린 씨어터를 찾았다. LPSTORY 이금구 대표님의 배려로 후배 1명을 데리고 갔다. 


후배는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뮤지컬 ‘바람’에서 가장 좋았던 노래는 수위 아저씨가 열창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고 후배는 말했다. 이미 한 차례 관람한 바 있는 후배는 이번에도 공연이 참 좋았다며, 멀티맨 박신후 씨와 페이스북 친구라며 자랑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오랜만에 따뜻한 감성에 취할 수 있었다. 


배우 조정환. 페이스북 이한복님 게시 사진 중에서.


누적 관객 10만 명, 2주간 연장 공연 돌입


그동안 수차례 공연을 관람했는데, 이번엔 이풍세 역의 조정환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과연 어떤 느낌일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관람했다. 공연이 열리고 조금은 긴장한 듯한 조정환 배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나 역시 조금 떨렸다. 아, 이런 분이셨구나. 노래가 한 곡, 두 곡 끝나자 조정환 배우는 역할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세 안정감을 찾으며 이풍세 역에 푹 빠졌다. 


오히려 첫 만남의 긴장감이 묘하게 공연 내내 긴 여운을 남겼다. 조정환 배우는 뮤지컬 출신 배우답게 연기와 노래에서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강약중강약 리듬을 타듯, 발성과 호흡에서 미세한 떨림조차 의도된 듯 잘 어울렸다. 진지함과 유쾌함의 조화는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고, 중간에 故 김광석을 위해 <왜 그리운 것들은>을 부를 땐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2017년 세밑, 가장 ‘김광석’다운 뮤지컬이 바로 ‘바람’이다. 이 뮤지컬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고스란히 내뿜는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추억을 소환해 술잔 앞에 앉게 한다. 아마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기억에 남아 있는, 우리가 서 있던 곳이 아닐까.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추억의 열차를 타야 한다. 뮤지컬 ‘바람’은 당신을 그곳으로 데려다 준다. 


김광석은 가장 훌륭한 악기를 지녔다. 바로 그의 목소리이다. 뮤지컬 '바람'의 훌륭한 악기는 우리 모두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리가 서 있던 곳


우리에게는 삶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사랑을 노래했던 가객 ‘김광석’이 있다. 김광석은 화려한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 오히려 단순화의 길을 선택했다. 반주나 편곡에선 지극히 사운드를 아꼈다.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사람의 목소리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이다. 그 악기도 주인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김광석은 가장 훌륭한 악기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뮤지컬 ‘바람’ 역시 가장 훌륭한 악기를 갖고 있다. 무대에 선 배우들뿐만 아니라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과 제작진들 모두가 아름다운 악기들이다. 이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노래와 음악은 그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는 정서를 내뿜는다. 예전부터 김광석은 노래 하나만으로 우리들을 울고 웃게 했다. 노래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단지 화려함만으로 혹은 단순히 구호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광석은 언제나 웃었다. 슬픔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참기 위해 그는 웃었다. 슬픔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노래로 입김을 내뿜어 방어했다. 김광석을 듣는 것은 그와 우리의 고뇌를 서로 이야기하고 위로하며 내일을 더 높게 보기 위한 디딤돌을 얻는 것과 같다. 


김광석은 언제나 울었다. 김광석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호소했다. 그는 아마 태어나 살아가면서 말보다 노래를 더 많이 했을지 모른다. 그는 웃기보다 울기를 더 많이 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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