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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Sep 01. 2016

스펙을 밝히지 않는 만남에 대하여

더커피클럽 이야기

회사 이름이자 서비스 이름이 더커피클럽이라고 했더 많은 분들이 카페 사업하냐고 되물어주셨다. 그럴 때 나는 그냥 쓱 웃고 만다.


“와, 무슨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같아요"


어느 분이 우리 ‘더커피클럽’의 컨셉을 진지하게 들으시더 주소도 입구도 공개되어 있지 않아, 지인의 소개를 받거나 단서를 가지고 찾아가야 하는
비밀 Bar 같다며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거기까지 의도하진 않았는데, 재밌게도 그렇게 됐다.


더커피클럽은 '미혼 남녀'가 ‘커피 한 잔’을 하면서 1:1로 만날 수 있는 멤버십 소셜 클럽이다.
홈페이지도 없고, 네이버에서 검색도 안된다. 모바일 앱도 아니다.
더커피클럽 내에서 같은 사람과 3회 만날 때까지는 '이름, 직업, 학력, 나이, 소득, 종교' 등의 스펙을 물어볼 수도, 밝힐 수도 없다.


스펙을 넘어 내 본연의 매력을 표출하고,
상대가 가진 진짜 삶의 철학을 파악해 보겠다는,
이 클럽의 취지와 철학에 동의하는 게
가입의 첫 번째 관문이다


회원을 소개하는 프로필에도 사진은 물론, 신상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그 사람의 '취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만 녹아져있다.
그동안 연애를 전제로 하든 안 하든, 친구를 사귀고 싶어 어딘가에 가입하려고 하면 늘 사진과 스펙을 포함한 자기소개를 요구받았다. 내 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게 나는 되게 쑥스럽기도 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아무런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그런 소셜 클럽을 만들었다.


스펙에 대해서 물어볼 수 없으니, 처음 보는 남녀 사이에 할 얘기가 없으실까봐 내가 매주 서로의 ‘취향/가치관/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대화 주제를 드린다. 대화 시, 이 주제를 활용하고 안 하고는 물론 자유이다. (이성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은 동성에게도 만남 신청을 할 수 있다.)


모든 이성 만남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펙 파악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알아가는 순서를 바꾸고 싶었다. 연인 혹은 배우자를 찾는데 있어 스펙보다 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쉽게 예를 들면 이런 지점들이다.
어쩌면 결혼으로 가기 전까지도 모를 수 있는...
시각이 서로 다르다면 살면서 꽤 불편할 수도 있는 지점들. 화두들.
나는 매주 이런 인생 질문들을 발행한다.


-좁아도 핫플레이스에 살고 싶은가 / 도심에서 조금 떨어지더라도 넓고 여유롭게 살고 싶은가
-비싸더라도 하나를 좋은 것으로 사는 편인가 / 저렴한 것을 많이, 다양하게 사는 편인가
-‘안정’을 추구하는 편인가 / ‘모험’을 추구하는 편인가
-필요 없는 물건은 잘 사지 않고 잘 버리는 ‘미니멀리스트’인가 / 한번 인연을 맺은 물건은 잘 버리지 않는 ‘맥시멀리스트인가’
-멘붕에 대처하는 혹은 어떤 일의 성공을 이끌어 내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 있는가.
여러분의 대답은 어떠한가.


어렵게 더커피클럽의 회원이 되신 분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또,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만나 대화했을 때 불러올 엄청난 에너지, 스파크를 상상해보라)
스펙을 밝혀도, 심지어 자랑해도 되는 분들이
스펙을 밝히지 않고 그보다 더 중한 걸 꺼내보고, 알아가보겠다는 데에 함께해주셨다.


더커피클럽은 이성과 1:1로 커피 미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연애를 전제로 한 소셜 클럽이지만, 만약 이 곳에서 그저 많은, 혹은 조건에 딱 맞는 이성을 만나고자 한다면 다른 플랫폼들이 더 나을 수 있다.



‘더커피클럽’의 목표는 단 한 잔의 커피를 할지라도
연애를 넘어, 서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감(Inspiration)’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펙을 밝히지 않는 만남일지라도, ‘더커피클럽’의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더커피클럽의 지향점은 ‘연애의 플랫폼’을 넘어선, 인생의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성숙한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연인 혹은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찾는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래서 멤버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 가입 의지만 가지고는 클럽에 참여할 수 없으며, 한 분 한 분이 이 클럽에 어떤 영감을 불어넣으며 기여를 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우리의 철학과 스타일에 맞지 않는 분은 연회비를 내고 참여할 의지가 있으시더라도 정중하게 돌려보낸다.


나는 매일매일 나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멋진 사람들과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어떤 만남과 대화를 통해, 우리 멤버들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친구, 연인, 배우자를 찾고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이게 나의 삶이자 놀이이자 일이다.



여기까지, 카페 사업을 시작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스피크이지 바보다는 훨씬 친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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