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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Jan 15. 2024

오르고 또 오르면

박사과정 수료의 소회(所懷)

도시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전 계열 대학원생 대상 최우수 연구자에 선정되어 서울시립대학교 총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건축으로 시작해서 도시계획을 경유하고 (도시)사회학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10년을 쏟았다. 게다가 박사학위 취득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아직까지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거대한 산이 남았지만, 몇 개의 봉우리를 가까스로 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서울시립대학교 전 계열 대학원생 대상 연구과제(가-1-4)에서 최우수 연구 선정, 2024.1.12.


연거푸 다른 분야를 전공하다 보니 학문별로 나름의 구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내용으로 길게 말할 수 있지만 거칠게 요약하면) 건축은 사람, 도시는 제도, 사회는 관계를 연구한다. 그리고 각각의 요소는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종속적(Mutually Dependent)이다.

'건축(설계)은 사람을 연구한다.' 공간의 쓰임과 사람의 신체에 대응하여 물리적인 형태를 도출하는 것이 건축이다. 건축은 사람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므로 인문학적이고, 물리적인 구현을 전제하므로 공학적이며,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므로 예술적이다. '도시(계획)는 제도를 연구한다.' 도시에서 제도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관습이나 도덕, 법률 같은 사회구조이며, 다시 말하면 ‘도시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따르는 규칙’이다. 그래서 사람의 활동을 위한 규칙을 만드는 일이 도시계획이다. '사회(학)는 관계를 연구한다.' 어떤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 상호작용을 추적하는 것이 사회학분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접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다양한 연구 기법을 활용해서 경험적인 조사를 하고 결과를 분석한다. 건축과 도시계획이 물리적인 배경을 전제한다면 사회학은 좌표로부터 자유롭다.


한국예술경영학회·서초문화재단 공동포럼, 반포심산아트홀, 2023.9.15.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달라진 점들이 있다. 우선 '맥락(context)'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현상은 시간과 사건이 쌓인 결과이며,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현상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관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면을 관찰하려는 노력이 습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활동이 큰 변화를 촉발한 사례를 여러 차례 발견했으며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의 위계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연구를 공유하는 것의 효용을 깨달았다. 학사와 석사과정에서는 나의 프로젝트나 연구를 주변과 공유하지 않았다.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입하여 빠르게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결과물은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사과정에서는 학회에서의 발표 등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연구내용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학회에서 유관한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발표를 보고, 내 연구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으며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연구의 영역이 나의 좁은 지식의 울타리를 넘어서 다른 연구자들의 울타리와 교차되고 합쳐지며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23년 한국문화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 추계예술대학교 창조관, 2023.11.17.


한결같은 나의 관심분야는 예술과 도시·사회의 상호작용이다. 이 거대한 주제를 연구로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더해져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문화기반시설이 지역(문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한국예술경영학회·서초문화재단, 한국문화경제학회, 한국지역사회학회·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포럼 및 학술대회에서 진행 중인 연구를 발표하고 연구를 발전시킬 소중한 의견들을 들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학생들에게 특강으로 연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2023년 지역사회학회 추계학술대회,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23.12.8.


학교를 재학 중일 때는 시스템에 몸을 맡기고 커리큘럼에 따라 배움을 즐기면 된다. 그러나 수료하면 덩그러니 홀로 남는다.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며 방향을 찾아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람은 많은데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경우 수료와 동시에 풀려버린 시간의 고삐를 다시 틀어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공부하는지, 박사학위를 따면 뭐가 좋은지 나도 모른다. 그저 숙명이나 굴레처럼 박사학위를 향한 고행을 받아들이고 있다. 막막할 땐 겨울에 지리산을 종주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두텁게 눈이 쌓인 산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작은 봉우리를 넘고,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어도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산은 높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럴 때는 고개를 숙이고 한 치 앞만 보면서 걸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한참을 와 있었다. 박사논문도 그렇게 준비하려고 한다. 매일을 충실한 것이 정도(正道)라고 믿고 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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