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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hicsmini Jan 29. 2018

시작하기 전에

미국대학원 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 

대학교 2학년 때 휴학하고, YWAM을 통해 Oxford, New Zealand에서 지낸 적이 있다. 가족 또는 친구와 정말 원 없이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그렇게 몇 개월을 해외에서 지낸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내가 지낸 곳은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이 한 명도 없었다. 굳이 찾아보니, 숙소 앞에 조그마한 슈퍼 주인이 중국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눈뜨자마자 해야 하는 말이 영어였고, 벙어리 같았던 나의 영어가 살기 위해 늘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나를 굉장히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헤어지기 전에 그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외국물'을 먹었다. 


그 이후, 대학에 돌아와서 학업을 마치기 직전 다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New Zealand에 다녀와서부터 계속 미국 대학원을 가고 싶어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아버지와 나는 교환학생 다녀오는 걸로 퉁치기로 했다.) Indiana 주에 있는 Taylor University로. 기숙사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Crossfit을 수업으로 듣고,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Fine Art 수업을 위주로 들으며 허접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순수예술작품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학생 신분으로 살아서인지, 교환학생 시절은 New Zealand보다 현실적인 외국생활이었다. 


한 학기의 외지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전시로 1년을 보낸 후 정말로 학업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스타트업에 취업을 했다. 2년 6개월 동안 운 좋게도 내 경력, 나이에 비해 많은 서비스를 론칭했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배웠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20대에 더 많은 걸 도전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시 미국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실제로 몇 년 동안의 사회 경험을 선호하는 대학원들이 많았다. 아, 지금이 적기구나. 바로 퇴사를 했다. 급하게 결정하고 나가게 되어서 회사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이게 잘한 선택인지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이런 완벽한 타이밍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감사했고, 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제 내일모레면 모든 지원이 끝난다. 6개월간의 준비 과정이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처음 시작할 땐 너무도 아득했다. 나도 Florida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블로거의 글을 읽고 많이 도움을 받았었으니, 누군가가 미국 대학원을 지원한다면 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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