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시작할 때입니다.
"일하고, 퇴근하면 저녁 일과 시작. 아이 씻기고 재우다가 같이 기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근교 나들이, 도서관, 여행 등 가족 시간 갖기.
그런데 주말의 ‘여행’까지도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 하루가 미션처럼 느껴진다."
이는 사실 어느 날의 저의 일기장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저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봅니다.
제 주변의 지인들만 보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까요.
할 일은 많고, 눈앞의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갑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내 앞에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지요.
그렇게 하루가, 주말이. 계절이, 1년이, 삶이 흘러나 버리는 걸까요?
내가 삶을 사는 것이 맞을까? 삶이 나를 사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삶이 나를 컨트롤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끊임없이 쳇바퀴를 돌고만 있는 것 같다.
소중한 하루를 누리기보다 하루하루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면서,
꽉 차 보이지만 사실 빈 것 같은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지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여름, '아 더워, 힘 빠진다. 회사에서는 에어컨을 왜 일찍 안 틀어주는 거야.' 보다,
창 밖으로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여름이네! 내가 좋아하는 땡모반! 수박주스의 계절이다!'라고
여름이 좋은 이유를 헤아리며 반기고 싶고,
아이와 하원하는 길, 집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산책하자는 아이에게, ' 이제 좀 가자, ' 대신에
무릎 구부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산책 더 하고 싶었구나. 저녁시간이니 한 바퀴만 돌고 이제 들어가는 거다'라고 싱긋 웃으며 아이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에 집중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빠르게 밥을 먹기보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음식, 건강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고 싶고,
제자리에 걸려있지 않은 옷, 늘어져 있는 장난감으로 스트레스받기보다
정리된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순간. 순간을 누리고 사는 것이었지요.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는 대신, 그날의 의미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을 접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흐릿했던 하루가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이죠.
그냥 삭제된 것처럼 느껴지던 하루, 하루도 들여다보니,
기획안을 마무리하며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 있었고,
동료들과 무엇인가에 깔깔 웃었던 즐거움의 순간이 있었어요
아이와 거품 만들며 함께 목욕하고 꼭 안으며 따스함과 평온함을 느꼈던 시간이 있었고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어 호밀빵과 루이보스티에, 아이는 좋아하는 쨈에 발라먹으며
여유롭게 음미하였던 주말 아침도 있었죠.
기록을 하자 시간과 일상이 정리되고 정돈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순간, 생각, 느낌이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겨지면서,
하루가 사라진 듯한 느낌 대신 깊이 있게 하루를 누리는 감각이 생겨났습니다.
하루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 같다고 느껴지신다면,
지금이 바로 기록을 시작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