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제일 재미있다는 아이의 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하교 후 아이에게 학교에서 어떤 게 가장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을 하였습니다.

“화장실 가는 게 제일 재밌었어.” 처음엔 장난스럽게 반대로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가 웃으며 밝게 얘기했거든요. “그럼 제일 재미없었던 시간은 언제야?” “쉬는 시간!”


“이상하네~ 반대로 말하는 것 같은데?” 하자 아이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면 자유롭잖아. 지금 하고 있는 거 안 해도 되고, 돌아오면 다 끝나 있잖아. 근데 쉬는 시간은 친구 없이 혼자 놀아서 재미없었어. 그냥 다른 친구가 철봉 매달리는 것만 봤어.” 얼마 전 같은 반에서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는데,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한국에서 영상과 책으로 영어를 접하긴 했지만, 실제로 영어로 대화한 경험은 거의 없었으니 학교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하교 후 놀이터에서 씩씩하게 뛰노는 모습만 보고 잘 지내겠지 싶었는데, 사실은 낯선 언어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긴장을 잔뜩 하며 보내고 있었던거죠. 저는 내색하지 않고,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화장실은 몇 번 갔어?” 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쉽게 잠들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다음 날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습니다. 저는 우리 집이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밝고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안정과 회복을 찾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집이요. 그리고 저는 ‘에너지 넘치는 다정한 엄마’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아이의 말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고, 먼저 공감할 수 있어야겠다 싶었어요.


명랑하고 쾌활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즐거워진다. ... 명랑한 사람은 불행한 일을 겪어도 쉽게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기질과 매우 관련이 있다. 그러나 꾸준한 운동이라는 노력으로 명랑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 쇼펜하우어 -


아이에게 ‘화장실’은 도피처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잘못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하고, 무엇보다 공감을 먼저 해주고 싶습니다.

하교 후에는 놀이터와 체육 활동에서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요.


“아이들은 6개월만 지나도 많이 적응해.” 미국 오기 전 종종 들었었는데요. 이를 '아이들은 쉽게 적응한다'로만 받아들였던것 같아요. 그 앞에는 '6개월이든 몇개월이든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간과했었던거죠.


지금은 바로 그 ‘과정’ 속에 있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하루를 돌아볼 때 “재미있었다”는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려 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다정한 사람.’ 그러려면 먼저 제가 제 에너지를 채우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겠어요.


20250925 산책길.png Photo by Yul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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