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사라지고 감각은 남는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리는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낡은 빌라로 이사를 갔다. 버스를 타고 열 정거장은 족히 지나야 학교에 닿을 수 있었고, 아침마다 나는 만원 버스 안에서 낯선 어른들의 팔꿈치에 떠밀려 이리저리 치이다가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꽤 고된 통학길이었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를 만나면서 그 시절은 덜 외롭고, 조금 더 견딜 만해졌다.
그 시절, 엄마는 아침 일찍 나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찌개를 한 솥 끓여놓고 출근하셨는데, 한참 자라야 할 나이였던 오빠와 나는 그 찌개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 자라났다. 그 작은 집에 찌개 냄새가 진동하는 날이면 우리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난 듯 식탁 앞으로 달려갔고, 여느 남매처럼 서로 더 먹겠다고 다투며 한 숟가락씩 키를 쌓아 올렸다.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엄마의 찌개는 우리 식탁을 늘 따뜻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가끔 꽃게탕이라도 끓이는 날이면, 우리는 큰 대접을 꺼내 꽃게 다리를 발라 밥 위에 쌓으며 작은 전리품처럼 소중히 여겼고,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그 집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걸 갖게 되었다. 책상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 방이었고, 책상 밑으로 몸을 누이면 방이 가득 찼다. 그럼에도 나는 기뻤다. 내 방, 내 세계. 그 공간이 주는 은밀한 안락함에 나는 매일 밤,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했다. 이문세 DJ의 따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혼자 꺽꺽 웃던 밤들. 가족들을 깨울까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면서도,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조용히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오빠 방 한켠엔 엄마가 큰맘 먹고 장만한 세계 문학 전집이 있었다. 오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방학이 되면 그 중 한 권을 어렵사리 골라 하루 종일 바닥에 누워 읽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여름날, 나는 그 책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나만의 우주를 확장해갔다. 다른 오락거리는 없었지만,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일은 그 시절의 가장 평온한 즐거움이었다.
책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로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이 방학 전에 알려주신 주소로 조심스레 첫 편지를 보냈고, 일주일쯤 지나 도착한 답장을 읽으며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들떴다. 줄무늬 편지지에 가득 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선생님과 나 사이에 비밀스러운 연결이 생긴 것처럼 느꼈다. 그 후로도 나는 방학 동안 책을 읽으며 키운 서툰 문학적 감성을 끌어다 편지를 썼고, 그 일은 내게 오래도록 설레는 일이 되었다.
그 집에서 나는 사춘기를 보냈다.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엄마의 찌개를 먹고 자랐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충족된 듯했지만, 마음 한 켠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엄마는 늘 고단했고, 생활은 필요한 만큼만 채워졌다. 그 시절 부모님은 자식을 굶기지 않기 위해, 또 학교에 보내기 위해 쉼 없이 일했고, 삶은 빡빡하게 조여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말을 나누지 않게 되었고, 책 속으로 글 속으로 도망쳤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기보다, 내 세계를 더 넓히고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가끔 그 작은 빌라를 떠올린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그 빌라는 우리 가족 네 식구가 마지막으로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살았던 집이었다. 이후 오빠는 대학교로, 아빠는 미국으로 떠났고,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집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나에게 열렸던 세계는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살아 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사랑을 받기보다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랐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걸던 아이는 이제 스스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깨닫게 되었다. 모든 공간은 기억의 그릇이 되고, 기억은 결국 존재의 흔적이 된다는 것을. 철학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말했듯, 진정한 기억은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무심한 순간에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내게는 그 감각이 종종, 엄마의 찌개 냄새나 낡은 라디오 소리처럼 찾아온다.
그 작은 빌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을 살아간다. 그곳은 나의 첫 우주였고, 감정의 뿌리였다. 그리고 오늘, 유난히 그 집이 그리운 것은 어쩌면 내가 나 자신과 다시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를 이루고 있는 또 하나의 현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