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날들 위에 앉아

던져진 존재, 채워야 할 삶

by Miyuki

요즘 부쩍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아버지가 왜 그런 선택에 도달했는지, 그 생각의 끝자락에는 어떤 생각의 과정들이 있었는지, 나는 아버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 본다. 마치 아버지의 머릿속을 좇아가듯, 그의 길을 따라 필사적으로 생각을 이어가 본다.


예전부터 나는 아버지와 내가 많이 닮았다고 느껴왔다. 생각의 기제가 닮아서였을까. 나는 내 아버지가 걸었던 사유의 길 위에서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런 날들은 대개, 앞으로의 날들이 그려지지 않을 때였다. 아니면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하루가 영원처럼 반복될 거란 예감이 밀려올 때. 쌓아올린 모래성이 몇 번이고 무너지고, 다시 그것을 쌓을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없을 때. 삶이란 의미 없는 반복이라고 느껴졌던 그 감정.


아버지도 그러했을까?

그럼에도 나는 눈물이 난다.


아버지, 참 너무하셨어요.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렇게 혼자 떠나시다니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 험하고 까마득한 길을 결정하기까지,
또 실행하기까지.


가시려던 길 중간에서 내가 그 방향을 되돌릴 수는 없었을까. 수도 없이 이미 벌어진 일을 다른 결말로 바꾸는 상상을 해보지만, 결국 선명하게 남는 건 단 하나의 진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다.



서른 즈음의 나 역시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무겁게 고민하던 어느 날, 무심코 읽은 한 스님의 문장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았다.


삶엔 의미가 없으며 우리는 그저 던져진 존재일 뿐, 그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은 이상하게도 나를 허무로 이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삶을 채워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이끌었다. 의미가 없기에,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어쩌면 그 순간부터, 아버지와 나는 다른 방향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이미 한 생을 살아냈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며 더 큰 보폭으로 온몸이 부서지도록 일하셨다. 그의 삶의 의미는 너무도 단순하고 구체적이었다. 매달 한 번, 손에 쥐어야 했던 월급봉투. 그 안에서 끼니를 기다리는 가족의 얼굴. 자식들이 자라고,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는 어쩌면 삶의 남은 시간을 ‘점점 더 무너지고 어두워질 날들’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소중히 모아두었던 나의 편지들을 떠올린다. 꼭꼭 눌러 쓴 딸의 글자들, 그 편지를 어두운 날에 힘겹게 펼쳐 읽으며 ‘조금만 더 버티자’ 다짐하며 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사진첩은 끝내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 사진들은 그의 품 안에서, 마지막 순간 함께 타버렸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가족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무리 담담한 척했다 한들, 정말로 혼자서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가족의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안고 혼자서 그 길을 나선 두려움을 애써 이겨내려고 하셨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날의 아버지를 상상한다. 괴롭지만, 그것만이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생각의 방식이 닮았기에, 그가 남긴 침묵의 의미들을 나는 감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에는 늘, 그리움이 남는다.


이제는 형체로는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존재.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되어 떠도는 존재.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내가 알고 사랑했던 그 누군가. 지금은 아버지를 만날 수 없지만, 언젠가 다른 차원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양으로 다시 얽힐 수 있으리란 소망을 한다.


확실한 건, 아버지의 이미지가 여전히 너무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생생한 존재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엄청난 상실감. 그게 기억의 끝에서 나를 매번 주저앉힌다.


언젠가 생이 다하는 날, 나도 아버지가 간 곳의 비밀을 조금은 알 수 있을까. 그 날까지, 아버지는 내 기억 속 아주 커다란 자리 하나를 꿋꿋이 지킬 것이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아버지가 내게 남기려 했던
무언의 의미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것을 찾기 위해,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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