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은 기억
깜빡 잠이 들었다가 손발이 저려 흠칫 놀라서 일어났다. 꿈에서 깬 것이다. 오랜만에 꾼 꿈은 유난히 선명했고, 오래도록 기분을 가라앉혔다.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
꿈 속에서 나는 그 집에 있었다. 일년 전 떠나온 그 집. 사촌과 그 가족들이 함께 살던 곳이었다. 이상하게 집 안은 흐릿했고 어두운 조명 아래 낯설게 재배치돼 있었다. 익숙했던 소파는 거실 양쪽 벽을 따라 나란히 놓여 있었고, 한쪽 소파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노인이 앉아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가방도,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 빨리 그 집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찾을 수 조차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문이 열리며 사촌과 그녀의 남편이 들이 닥쳤다. 그들은 몇 초간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자기들끼리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공기를 더는 견딜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채 맨발로 집밖을 빠져 나왔다.
순간, 멀리서 엄마가 달려와 무언가를 내게 건넸다. 가방인지, 신발인지.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듯한 순간이었다. 그게 꿈의 끝이었다.
어쩌면 그 집에서 내가 진짜로 잃어버린 건 물건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사촌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 건 엄마와의 관계가 바닥까지 내려앉았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시골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 삶의 방식이 크나큰 실패인 양 주말마다 집으로 찾아와 비난의 어조로 구석으로 나를 점점 몰아 세웠다.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한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인가 나는 참다참다 엄마에게 큰 소리로 대들었다. 엄마는 “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울면서 짐을 싸 이사용 트럭을 혼자 몰아 열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그 집이었다.
그 집으로 이사를 결정하기 전, 사촌은 말했다.
우리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
아래층은 언니 혼자 다 쓸 수 있어.
언니가 곁에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아.
고마웠다. 힘들 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공동체와 모임에 자꾸 끌려 다니게 되었고, 나는 내 목소리를 잃어갔다. 원체 자유로운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자꾸만 죄인처럼 작아졌다. 나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갑갑하고 불편했다.
어느 날, 더 이상 그 사역에 참여하지 않겠노라고 조심스레 선언했다. 우리의 삶이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 한 집에 같이 산다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의 모양과 방향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사촌의 남편은 나를 아예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사촌은 양쪽의 눈치를 보며 힘들어했고, 나는 점점 그 집에서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날라왔다. 나는 밤새 운전해 부모님 집으로 향했고, 정신없는 장례 절차 속에서 멍한 상태로 사촌에게 전화했다.
너무 힘들어. 여기로 와줄 수 있어?
그녀는 “남편과 상의해볼게”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단 세 줄의 문자가 도착했다.
남편이랑 얘기해봤는데,
여섯 시간 운전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아.
아이들 데리고 가기도 힘들고. 미안해.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 문자를 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러니...
그렇게까지 외면받을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넌 나한테 가족 이상의 존재였는데.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용서했다가 미워하고, 다시 용서했다가 또 미워했다. 그리고는 그 길로 그 집에서 나와 다시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는 겨울 내내 마음이 곪았다.
그리고 오늘, 그 응어리가 꿈으로 돌아왔다. 그 집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다가 상처받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 초조하게 헤매다 맨발로 그 집을 나서는 나.
마지막엔 엄마가 내가 그토록 절실히 찾고있던 것을 들고 나타난다. 어쩌면 그게 유일한 구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진 자리 끝에서 손을 내민 사람은, 결국 내가 등지고 싶었던 엄마였다.
그 집은 내게 상처로 남았다. 동시에, 인생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 장소이기도 했다.
내가 잃어버린 건 단지 신발이나 가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였고, 기대였고, 관계라는 이름의 아주 오래된 착각이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내 고통에 저절로 손을 내밀어 줄 거라는 생각.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줄 거라는 믿음. 그건 어쩌면 나만의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자주 그런 식이다. 어떤 장면은 이미 끝나버렸는데, 마음은 그 장면 속에 계속 머문다. 육체는 벌써 다른 곳으로 옮겨왔는데, 기억은 아직도 그 문 앞에 서 있다. 그건 용서일 수도 있고, 이해일 수도 있고, 혹은 그저 한 번쯤 돌아봐 달라는 기대일 수도 있겠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흐릿해지고, 그 끝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만이 남는다. 구체적인 언어로는 옮길 수 없는 상실감. 그건 꿈처럼, 끝나지 않은 채 거듭 반복된다.
나는 지금도 그 꿈으로부터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그 문 앞에 서 있다.
더 이상 들어갈 수도 없고,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로.
마음이란, 그렇게도 복잡하고 애매하다.
진실이란 어쩌면, 그 애매함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