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했던 스물 일곱, 뜨거웠던 말레이시아
습기로 무거운 공기가 아침부터 밀려든다.
열대의 새벽은 이렇게 눅눅하고 묘한 기운을 품고 있구나.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한 아파트에서 낯선 하루를 맞으며 나는 숨을 고른다. 한국에서 서둘러 짐을 꾸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온 지 며칠,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첫 출근을 앞둔다. 스물일곱, 세상에 무모하게 뛰어든 내가 이곳에 와 있다.
출근 버스를 타러 새벽녘 정류장으로 달려간다. 이 버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시간을 훌쩍 넘어 세렘반이라는 소도시의 사무실로 한국인 주재원들을 데려다준다. 중년 남성들로 채워진 버스 안, 갑작스레 등장한 젊은 여직원을 그들은 호기심과 경계가 뒤섞인 눈초리로 훑는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자마자 그들은 창가에 고개를 기댄 채 잠을 청한다. 나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조용히 빈자리에 앉는다. 첫날부터 시선을 끌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년 반 가량을 회사에 다녔지만, 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했다. 성장을 갈망했으나 날마다 반복되는 단조로움만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에서 급히 인력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말을 틈타 비행기를 타고 인터뷰를 보러 날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고민은 있었지만, 스물일곱의 나는 잃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나이였다. 이건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망설임없이 짐을 싸 이 열대의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회사 생활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거칠고 혹독했다. 업무는 죄다 낯설었고 모든 것이 생소했다. 상사는 차가웠고, 누군가 다정히 나를 위해 기초부터 가르쳐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물어가며 겨우 완성한 결과물은 조잡하기 그지없었고, 그에 따른 비판은 날카로웠다.
이게 뭐야?
상사의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스물일곱의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2년이 지나고 나서야 회사의 구조적 문제를 깨달았다. 말단 사원인 내가 중간 관리자 없이 곧바로 과장과 부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구조였다. 선임의 조언으로 결과물을 다듬어가는 과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정글 한가운데 홀로 던져진 사냥감처럼 짬바가 하늘같은 상사의 비판 앞에 맨몸으로 서 있어야 했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밤이면 괴로움으로 베개를 적셨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수없이 자문했지만, 그 질문들은 머릿속에서만 맴돌며 사그라들었다. 도망칠 수 없을 만큼 이미 깊이 들어와 있었다. 어쩌면 약간의 오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머리를 썼다. 질책을 줄이려 업무 흐름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결과물을 그래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상사의 비판은 일상이 됐고, 자존심과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럼에도 버텼다. 스물일곱의 나는 강인했다.
주말은 치열했던 평일에 대한 보상이었다. 현지 친구들과 ‘마막’ 노점상에 앉아 달콤한 테타릭을 마시고, 기름진 로티를 뜯으며 수다를 떨었다. 때로는 밤기차를 타고 싱가포르로 떠나거나, 홀로 정글 속 여행을 감행했다. 회사라는 전쟁터를 벗어나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 헤맸다. 그 순간만큼은 숨이 트였다.
그렇게 버티며 단단해졌다.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갑옷이 자랐다. 설움 속에서도 배웠다. 기업의 시스템을 몸으로 익혔고, 현지인들과 교류하며 감각을 길렀다. 꽤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2년을 꽉 채운 나는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이후 미국계 기업으로 옮겼다.
나는 그 시절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처음 느꼈다. 힘들다고 투덜대봤자 누구도 내 짐을 덜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라고 내뱉은 말에는 책임이 따랐고, 그 책임은 결과로 증명해야 했다. 스물일곱의 나는 비로소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
말레이시아의 여름은 달콤하면서도 눅진하다. 마막에서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은 평일의 격전 끝에 얻은 따뜻한 위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열대의 기억은 낭만보다는 긴장, 눈물, 성장으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을 아낀다. 삶과 일을 온몸으로 배운 시간이었기에. 그 경험은 회사 생활을 끝내고 프리랜서라는 새 길로 나를 이끈 전환점이 되었다.
그 덕에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 어떤 경험도 나를 잃으면서까지 지킬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오히려 한계까지 밀어붙인 그 시절이 진정한 나를 드러냈다. 무엇을 그토록 목숨보다 더 귀하게 지켜내야 하는걸까? 나는 그 질문에 진지하게 나만의 답을 찾아가며, 그 경험을 토대로 내 삶의 중심을 ‘나’로 정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하는 일들을 사랑하고, 내 삶에 깊이 몰입해 있다. 앞으로도 성장하며 나를 채워가고 싶다. 세상 속으로 깊이 뛰어들어 나를 탐색하고 싶다. 스물일곱의 무모했던 내가 그랬듯, 겁 없이, 그러나 조금 더 지혜롭게. 그때의 나에게 고맙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아버릴지 선택하며 스스로를 조각해 나가는 여정 아니던가. 앞으로의 나날들 역시 섬세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새겨 나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