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빵집인가, 카페인가 (PPL아님 주의)
이곳은 빵집인가, 카페인가.
굳이 명명하자면 둘 다일 테지만, 내게 ‘파네라 브레드’라는 여섯 음절의 단어는 단순한 상업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낯선 중력에 짓눌렸던 내가 희미하게나마 본래의 궤도로 돌아오는 순간이 허락되는 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이라는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나의 불안한 자아가 더듬거리며 제 형태를 빚어 올리기 시작한 태초의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맛이 특별해서는 아니다. 미국의 빵맛이야 대개 밋밋하고, 커피 또한 기계적인 추출의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테리어 역시, 대량 생산된 프랜차이즈의 무난하고 예측 가능한 디자인일 뿐, 시선을 붙잡는 독창성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습관처럼 파네라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이유 모를 안도감이 나를 감싼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저 이곳에서는 내가 조금 더 여유로운 인간처럼 느껴진다는 것. 타인의 시선에 움츠러들 필요도 없고, 어색한 미소 뒤로 숨을 필요도 없는, 나를 잠시 쉬어가게 하는 곳이다.
이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나는, 언어라는 날개조차 돋지 않은 사회적 조류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거칠어서,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숨어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어기제였다.
“How are you?”라는, 별다른 의미 없는 안부조차 나에게는 커다란 숙제처럼 느껴졌고, 어색하게 “Good, you?”라고 되뇌이고는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문을 잡아주는 그들의 친절은, 과잉된 배려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불편했다.
그렇게 웅크렸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미국 생활 10년 차. 정체성의 연륜으로 따지자면, 이제 막 사춘기의 문턱을 넘은 불안한 청소년 정도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여전히 서툴고 어색한 순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적어도 이제는 당당하게 커피를 주문할 수 있고, 낯선 이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짧은 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먼저 문을 잡아주며, “Have a nice day!”라는,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상냥한 문장을 툭, 하고 내뱉을 수도 있는 정도.
그 모든 어색한 성장통의 배경에는, 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파네라 브레드가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불안한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재정비하는 나의 작은 기지였다.
카페의 풍경은 어느 지점을 가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칙칙한 나무색 가구들, 큼지막하게 걸린 메뉴 보드, 뭉근한 스프 냄새와 쌉싸래한 커피 향이 뒤섞인 공기. 입구의 자동문을 지나 음료 리필 기계 앞에 서면, 낯선 도시의 파네라조차 나의 방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침묵 속에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거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혹은 묵묵히 책장을 넘긴다. 그 틈에 끼어 앉아, 나 역시 때로는 잊었던 일기를 뒤적이고, 밑줄 그어진 페이지를 다시 읽고,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곳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 안의, 작고 사적인 나의 골방과 같은 곳이다.
한국에는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개성을 뽐내는 예쁜 카페들이 즐비하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그런 공간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동네마다 작고 분위기 있는 로컬 카페들이 존재하지만, 대개 가격이 만만치 않거나,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 탓에 괜한 불편함을 느끼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파네라는, 숨 막히는 일상에 터진 작은 숨구멍 같은 존재가 된다. 답답한 공기를 환기하고 싶을 때, 카페인이라는 얄팍한 위로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을 때, 파네라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 익숙함은, 낯선 환경에 지친 나를 조용히 안심시킨다.
게다가 이곳에는, 16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음료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놀라운 멤버십 제도가 존재한다. 두 시간마다 슬금슬금 다가가 아이스 블랙티를 홀짝이고, 때로는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기분을 전환하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 수 있으니, 가성비로 따지면 거의 넷플릭스 월정액 수준이다. 그러니 누가 나의 ‘최애’ 장소를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저 파네라 멤버예요.
물론 그곳에서 나는, 영혼의 밑바닥까지 끌어올린 가짜 ‘솔’톤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조금 더 명랑하게, 약간은 과장된 억양으로, 친절한 이방인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나의 평소 ‘도’톤의 목소리는, 이 거대한 땅에서는 좀처럼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파네라라는 작은 무대 위에서, 능숙하지 못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억지로 지어 올린 미소와 건조한 인사말 끝에는, 희미한 만족감이 따라온다.
상냥함이란, 때로는 자기기만적인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진실에 가까워지는, 묘한 전염성을 지닌 덕목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파네라에 들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내 안의 여전히 어색하게 공존하는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두 명의 어색한 친구들이, 잠시나마 서먹한 악수를 나눈다. 이곳은 여전히 빵 굽는 냄새와 인스턴트 커피 향이 뒤섞인, 평범한 프랜차이즈 빵집이자 카페이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닌다.
파네라는, 낯선 땅에서의 고단한 하루를 잠시 멈추게 하는 쉼표였고, 불안한 이방인이 어설프게나마 이 문화에 적응해나가는 성장의 공간이었다. 여기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은 더 여유로워진 나로 살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해본다.
많이 컸다. 그래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