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없이 자란 여자아이

인형 대신 인형 같은 소녀들과 놀았다.

by Miyuki

나는 억울한 기억을 참 오래도록 품고 산 사람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받은 것보다 부족했던 것이 먼저 떠오른다. 이 기억들 또한 어쩌면 내 기억의 편린이 만들어낸 왜곡은 아닌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그 또래 여자 아이들이 하나쯤은 가지고 놀법한 마루 인형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엄마에게 졸라봐도, 울고불고 애원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는 건 어린 나도 알고 있었지만, 엄마는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인형만큼은 끝내 사주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동네 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늘에 계신 분께 간절히 빌면 소원을 들어준대.”


그래서 기도했다. 마루 인형 하나만, 꼭 내게 보내달라고. 며칠이고 빌고 또 빌었지만, 마루 인형은 끝끝내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그 작은 좌절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잊히질 않는다.

그렇게 나는 인형 하나 없이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손엔 인형은 없었어도, 내 어린 기억 속엔 인형보다 더 생생한 인형 같은 소녀들이 함께했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케티 이야기〉, 〈작은 아씨들〉, 그리고 〈빨강머리 앤〉이었다.

〈케티 이야기〉를 통해서는 성실함과 자책을 딛고 성장하는 법을, 〈작은 아씨들〉의 조를 통해서는 자기 삶을 주도하는 당당함을, 그리고 〈빨강머리 앤〉에게서는 삶을 견뎌내는 생명력을 배웠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앤을 좋아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시리즈도 시즌 끝까지 정주행 했고, 그 책의 실제 무대였던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독일에 사는 나의 학생 ‘엘라’와 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도 나처럼 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그 친구는 빨강머리 앤 시리즈 8권 전집을 내게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나이 들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앤의 상상력과 그 못 말리는 생명력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처음엔 앤의 감정 과잉과 질문 많은 성격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상력과 감정을 통해 점차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단단히 세워나갔다. 그런 앤을 보면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겹쳐 보았다. 어쩌면 나는 앤을 응원한 것이 아니라, 앤에게서 그 시절의 나를 발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나를 이런 여자아이로 자라게 한 건, 엄마의 ‘책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인형 하나 사주지 못하는 엄마를 원망했지만, 돌이켜 보면 엄마는 내 손에 장난감 대신 상상력과 언어를 쥐어주었다. 그 시절 나는, 그 책들 안에서 나만의 조와 케티, 앤과 함께 자라났다.

엄마는 자주 말했다. 시절을 잘못 만나 원하는 만큼 배우지 못한 게 참으로 한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내가 글을 좋아하게 만든 사람이다. 엄마 스스로는 공부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내게는 책을 맘껏 읽게 해 주었고, 그건 엄마가 내게 준 가장 근사한 선물이었다. 나는, 놀랍게도 단 한 번도 그 사실에 감사한 적이 없었다.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뭐 대단한 고백이나 화해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손을 내미는 말을 건넸다.

“이제 다 정리하고 이쪽으로 올라와서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게 어때요?”

스스로도 정작 그 말을 꺼내놓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그 후에 들려온 건, 예전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래… 알았어.”

우리의 삶은 아마 앞으로도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이 살면 또다시 싸우고, 화해하고, 사소한 감정으로 다투고, 어쩌면 지겹게 마음을 다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는 동안,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고, 조금씩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생에서는,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엄마에게 손을 내밀기로 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해 엄마도, 내 손을 살며시 잡아준 듯하고.

앤이 상상과 말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한 것처럼, 나 역시 언어와 관계를 통해 내 삶을 다듬어왔다. 한때는 마루 인형이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지만, 지금은 안다. 그 부재는 내가 스스로 채워야 했던 여백이었고, 그 여백을 책과 이야기로 채워오며 지금의 내가 된 것임을.

앤이 질문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켜냈듯, 나는 사랑을 의심하면서도 끝끝내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결국 우리가 자란다는 건, 상처와 미움, 그리고 용서를 지나 다시 손을 내미는 일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과거를 갖길 바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 브레네 브라운

이제 나는, 불완전했던 과거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 앤처럼, 나도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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