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와 감사, 그 한 끗 차이

김치는 날름 받아먹고 입 싹 닫았다.

by Miyuki

오늘 아침, 힘겹게 눈을 떴다. 방 안이 아직 어둑하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블라인드를 올리자, 창 너머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을 바라보다 문득 지난 며칠을 돌아본다. 일에 치여 쉴 틈 없이 달려온 시간. 몸도, 마음도 함께 무거워졌던 나날들.

잠이 덜 깬 채 바로 욕실로 향해 머리에 샴푸를 문질러 거품을 낸다. 물줄기 속으로 거품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묘하게 마음도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이 개운하다.

2주 전, 엄마가 오래도록 운전을 해 내가 사는 버지니아에 올라오셨다. 내가 이사 온 후 처음이었다. 멀고 피곤한 길이라 말렸지만, 엄마는 어느새 그냥 와버렸다. 엄마의 차에서 짐을 내리며 나는 무심히 김치통을 찾았다.

간사하지.

그렇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선, 김치는 바랐던 거다.

“김치는 없어요?”

짐을 푸는 엄마의 손길은 분주했지만, 김치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바빠서 못 담갔다며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반찬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나는 괜히 볼멘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엄마 집에 들어가는 대신 한 달에 한 번 비행기나 내 차를 타고 엄마를 보러 갔다. 함께 살 자신은 없었지만, 오래도록 혼자 상처를 끌어안고 있을 엄마를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엄마는 내가 내려가는 날을 앞두고 밭에서 배추를 뽑고 소금에 절여 김장을 시작한다. 다듬고, 섞고, 양념으로 버무리고, 새벽까지 김치를 담근다. 내가 출발하는 날엔, 그 김치들을 하나하나 큰 통에 담아 차에 실어 보내준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트렁크에 실린 김치를 보면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다음에 엄마를 보러 내려가기 전까지 한 달동안 김치찌개를 끓이고,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김치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그 시간을, 나는 엄마의 김치로 버텼다.

이번에 김치를 가져오지 않은 엄마가 왔을 때, 나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인 마트에 가면 김치쯤은 쉽게 살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그건 엄마의 김치가 아니다.

참 내 마음, 간사하다.

간사함과 감사함은 한 글자 차이인데, 나는 왜 그 간단한 차이를 넘지 못하는 걸까.

그래, 시인하자.

나는 엄마와의 사이가 어렵고 힘들지만, 엄마의 김치는 정말 좋아한다.

엄마에게 말해야겠다.

“엄마가 해 준 김치 덕분에, 나 여기서 살아냈어. 고마워요.”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다.

우리 마음을 밝혀주는 건, 결국 사랑이다.

엄마는 분명 나를 사랑했다. 다만, 너무 투박하게.

나는 그 투박함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랑은, 그런 투박함조차 사랑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나는 조금 더 부드러워질 필요가 있다.

오늘 아침, 내 어둠을 밝혀준 건 창문 너머의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빛처럼, 내 마음을 밝혀줄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엄마뿐이다.

엄마의 손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 손을 내가 먼저 잡아본 적이 있었던가.

곧 어머니의 날이다.

나는 이번 달, 엄마를 보러 남쪽으로 차를 한 참 몰고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손을, 유심히 바라보리라. 그러다 마음이 조금 풀리면, 어색하더라도 그 손을 한번 잡아볼까.

이유 없이 그렇게 나 해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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