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설 속 주인공이다.

하루키 씨, 고마워요.

by Miyuki

요 며칠 비가 연일 쏟아진다. 평소 같았으면, 또 비야? 하면서 창밖을 보며 미간부터 찌푸렸을 텐데, 이번 비는 이상하게 반갑다. 창밖의 회색 풍경이 마음을 흐리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촉촉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 요즘 내 마음이 적잖이 해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느끼는 그 묘한 해방감, 한동안 메말랐던 마음에 촉촉한 빗방울이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 이번 비는 건조해진 공기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그런 기분 좋은 온도로 내게 와닿았다.


나는 일부러 비오는 밖에 나가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와서 방 안에 놓인 책상 앞에 앉는다. 어제 장을 보며 맛이 궁금해 호기심에 산 쿠키도 하나 꺼내 한 입 베어문다. 바삭한 식감 뒤로 달콤함이 밀려든다. 성공이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티타임을 즐긴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요한 시간인지.

또 얼마만의 여유인지.​

책상 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놓여 있다. 이 책은 너무 좋아하던 책이라 사두고 몇 번 읽었다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연초부터 이 책을 책상 위에 꺼내두었다. 그러다가 요즘 계속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다.

하루키의 책은 대학교 때부터 읽어왔지만, 이상하게 그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의 글이 더 좋아진다. 예전보다 더 단순하고 힘이 빠진 문장들, 하지만 그 안에 오히려 더 정제된 무엇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 그 역시 인생이라는 시간이 쌓이면서 문장 안에 응축된 농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 같다. 살아가며 무르익는 우리의 인생처럼.

나는 오래도록 생각해 왔다.​

‘나는 글을 직업으로 삼게 되진 않을 거야.’

그 일이 너무 대단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살아가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조금 더 깊이 다가왔던 순간들 앞에서 나는 늘 ‘기록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다.

어떤 순간은 기록으로 남았고, 어떤 날은 그저 스쳐 흘러가기도 했다. 기록된 장면은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지만, 기록되지 않은 순간은 어느덧 옅어졌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를 따라갔다. 툭툭 던지듯 말하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건, 결국 ‘그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지난 몇 해 동안 너무 많은 서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주변에서 일어났다. 그 시작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만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마음 깊은 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서서히 부풀기 시작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루키 씨에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차오르면, 그건 결국 언젠가 세상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나 역시 어느 시점에 도달하자, 내 안에 넘쳐나는 것들을 조금은 꺼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라는 이름의 소설의 주인공이 아닐까.

우리 각자의 삶 속에는 기쁨과 아픔, 성장과 퇴보가 얽혀 있고, 그 조각들이 모이면 하나의 서사가 된다. 그 개인적인 서사는 결국 한 개인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그 특별함은 다시, 다른 사람의 삶과 겹쳐지며 보편성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쓴다.

그리하여 글을 쓰면서

나라는 한 인간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싶다.

우리라는 이름의 소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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