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대신 나를 택했다.
시청 앞이었다. 그날, 그는 시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막 마친 참이었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달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그가 보고 싶어서. 시청 앞 현관에서 한참을 벅찬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면서 날 보고 반가움에 깜짝 놀랐으면 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눈빛은 낯설 만큼, 냉랭했다.
“밥은 먹었어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말없이 시청 근처의 햄버거집으로 발을 옮겼다. 우리는 가만히 마주 보고 앉아 말없이 햄버거를 삼켰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 입안 가득 고기 맛보다 먼저 눈물이 차올랐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미 식어버린 마음은,
아무리 붙잡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내 심장은 서늘한 공터처럼 휑했다. 그 공허함이 나를 무너뜨릴까 두려워, 나는 억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아야겠다고, 아니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한 일은, 필라테스였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센터에서 주 3일 프로그램을 거금을 주고 등록했다. 몸을 움직이면 그를 덜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이 끝나면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안 쓰던 근육을 고통스럽게 쓰며 처절하게 운동했다.
필라테스가 끝나면 곧장 동네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격렬히, 거칠게, 울면서 뛰었다. 눈물과 땀이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렀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슬픈 와중에도 팟캐스트 속 이야기들이 웃겨서 깔깔 웃음이 났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뛰었다. 그건 고통을 잊기 위한 나만의 처방이었다. 운동이 끝난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울다 잠드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의 루틴을 반복할수록 나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었다. 운동으로 찢어진 근육은 단단하게 붙었고, 열심히 태운 지방은 내게 처음으로 복근을 선물해 주었다. 그건 지독한 사랑 대신 나를 택한 대가로 얻은 마치 훈장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울면서 건강해지고 울면서 다시 살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 살아지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사람은 질기고 강한 존재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관계가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주는 일이, 내게는 늘 생존과도 같았다. 삼십 대까지도, 사람과의 접점을 찾는 일은 벅찼다.
관계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하나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일인데, 그게 늘 반반씩 고르게 되는 건 아니었다. 어쩔 땐, 한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을 내려놓아야만 관계가 굴러갈 때도 있다. 그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공평한 거래일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조금 늦게 알았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한다. 내 마음속 일 순위는 이제 언제나 나다. 내가 나를 챙긴 다음에야, 타인을 챙길 수 있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나는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지금의 나는 내 삶을 중심에 두고, 그 위에 관계를 얹는다. 그 사람이 있으면 감사하고, 없어도 내 삶은 여전히 단단하다. 내가 솔직하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 상대도 나의 이런 사랑법을 존중해 준다. 이전보다 인간관계가 훨씬 가볍고 평온해졌다.
그때의 뼈아픈 헤어짐은 내게 깊은 상처였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다. 내가 우선 살아야 건강한 사랑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슬펐지만, 상쾌했다.
그건 분명한 역설이었고, 나는 그 역설 속에서 살아났다.
나는 아직도 그때, 다 허물어져 가는 사랑 대신 나를 택한 나에게 고맙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그때를 살아냈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