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이 아닌 내 영혼의 언니
어제, 얼마나 피곤했는지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겨우 눈을 떴을 땐 몸이 무거운 상태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정신을 깨우기 위해 샤워기로 향했다.
따뜻한 물줄기 아래, 거품이 어깨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 흐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 이런 순간에 떠오른다.
나의 독일 언니, 엘라.
이제는 망설임 없이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
몇 년 동안, 매주 한 번. 그녀와 나는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에 대해, 부모와 남자에 대해, 사랑에 대해, 고양이에 대해 그리고 예술에 대해. 처음엔 한국어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니, 책상 위가 전쟁터처럼 엉망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보내온 편지들과, 어제 쓰다 만 나의 답장이 뒤엉켜 있었다. 종이 위에 그녀의 글씨가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나는, 오늘은 꼭 편지를 다 써서 부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생각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참 이상하다. 내 삶을 이토록 깊이 들여다봐 준 사람이, 한국도 아닌 먼 독일에 살고 있다니. 그녀는 내게 멘토이자, 친구이자, 언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 의무적으로 만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속상했던 날도, 아무 의욕 없이 무기력했던 날도, 도무지 눈물이 멈추지 않던 날도, 스크린 너머 그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엘라는, 내 이야기를 건성으로 넘기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고, 자신의 아팠던 시간들을 꺼내어, 내 마음 곁에 조용히 놓아주었다. 그녀가 해주는 말들은 늘, 그 시점의 내게 꼭 맞는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갈 외국어 선생님과 학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우린 어쩌면 소울 메이트일지도 몰라요.”
처음엔 그냥 듣기 좋은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나를 잊은 적이 없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화면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그 고마움을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내가 힘겨운 시간을 지나올 때마다, 그녀는 말없이 곁에 있었다. 함께 분노해 주고,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 가끔은 친언니보다 더 언니 같았고, 가끔은 나보다 더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가 내게 얼마나 큰 사람인지, 나는 매번 깨닫는다.
어제, 나는 엘라에게 말했다.
“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제발 좋은 이야기만 써줘요.”
하지만 나는 안다. 나쁜 이야기를 쓸 수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걸. 좋은 이야기만으로도 모자랄 사람이라는 걸.
그녀가 나의 어떤 이야기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었던 수많은 순간들. 그건 단순한 우정이나 친절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건 사랑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존중과 사랑.
나는 오늘 몇 시간 뒤, 언제나처럼 그녀와 수업을 한다. 그리고 오늘도, 화면 너머로 다정하게 말할 것이다.
엘라 언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