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에 한국어 곡조를 싣다.
샘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막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중개 플랫폼은 미국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전문가를 찾기 위해 이용하는 곳인데, 나 역시 그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찾고 있었다. 말하자면, 수요와 공급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디지털 ‘마담뚜’ 같은 곳이었다.
그의 소개글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힙합 뮤지션입니다,
언젠가는 한국어로 된 가사를 직접 쓰고 싶습니다.”
그 한 줄에 시선이 멈췄다. 나 역시 한국에서 음악을 만들었고, 가사를 직접 써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나의 배경을 소개하며,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그를 대면하기 전, 호기심에 살짝 검색을 해봤다. 장발의 미소년 같은 외모, 이미 여러 장의 앨범을 낸 힙합 뮤지션. 화면 너머로 마주할 사람의 성격이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 학생, 꽤 흥미로운 인물일 것 같다!
막상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자,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그가 하는 음악 장르는 꽤 터프한 힙합이었지만, 샘의 실제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수줍음이 많고 조심스러웠다. 샘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무엇보다도 언어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 뛰어났다. 조사, 어순, 높임말까지도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빠르게 흡수해 나갔다.
샘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오히려 단단하고 성숙했다. 어떤 주제를 꺼내도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할 줄 알았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뒤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얹는 방식은 한 사람의 품격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수업 중 자연스럽게 가족, 문화, 죽음, 슬픔 같은 가볍지 않은 주제들까지 나누곤 했다.
몇 번의 수업을 마치고서야, 그의 집이 내 집에서 차로 고작 30분 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30분이라면, 한국으로 치면 거의 ‘집 앞’ 아닌가. 대부분의 내 학생들이 타주에 살고 있기에 그가 동네 사람이라는 인연이 반가워, 나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벤트를 시작했다. 그의 생일마다 만나 한국 음식을 함께 먹는 것. 문화도 함께 나누자는 뜻에서였다.
첫 해엔 고깃집의 삼겹살, 두 번째 해엔 중국집의 짜장면과 짬뽕, 세 번째 해엔 분식집의 떡볶이와 김밥. 샘은 매운맛에 연신 혀를 내두르면서도, 새로운 한국 음식을 시도하는 그 순간들을 매번 흥미로워하고 신나 했다. 그와 식당에서 직접 만나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걸 보고 나는 내심 흐뭇했다. “너 한국어 선생님이 누구시니?”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가끔 그는 자신이 속한 힙합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공개 콘서트에 나를 초대하곤 했다. 스웨그 넘치는 젊은 힙합 크루들 사이에서 나도 나름대로 리듬을 타보려 애썼지만, 쿵쿵 울리는 사운드에 귀가 얼얼해지고 체력이 바닥나 결국 샘의 무대만 보고 조용히 빠져나오곤 했다. 이럴 때면 ‘세대 차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음악이었다. 샘은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 이 노래 한번 같이 들어요”라며 자신이 만든 곡이나 좋아하는 한국 힙합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 노래를 함께 듣고, 각자 느낀 점을 나눴다. 그는 내가 해주는 피드백에 귀 기울였고, 때로는 공감받았다는 안도감이 고스란히 얼굴에 번지곤 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참 곱고 예뻤다.
이번 주 수업에서 그는 말했다.
“선생님, 다음 달에 비비(BIBI) 콘서트 가요. 이번 앨범 중에 진짜 좋아하는 곡 있어요. 같이 들어보실래요?”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우리는 그 노래를 함께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말했다.
“와… 이 가사, 어쩜 이렇게 똑똑하고 섹시하지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표시였다.
우리는 ‘선생’과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지만, 음악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그저 음악을 사랑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고픈 두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