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는 고양이의 이름을 부른다.

처음엔 이름이 아닌 그냥 '고양이‘였다.

by Miyuki

처음 그는 내가 엄마 집에서 데려간 고양이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이름을 불러야 할 상황이 오면 그저 ‘고양이’ 혹은 복수형인 ‘고양이들’이라 지칭할 뿐, 따로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았다.

사연은 이랬다. 한동안 그가 고양이 동영상에 빠져, 어느 날, 나에게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만 어디서 구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엄마 집에서 데려다가 그에게 주었다.

10년 넘게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아본 경험 상, 고양이도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차라리 두 마리를 함께 키우면, 집을 비우더라도 같이 놀며 잘 지내기 때문에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고양이를 키워 보는 그의 입장에선 처음부터 부담이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한 마리만 남기고 다른 한 마리는 데리고 가라며 성화를 부렸다. 그래도 꾹 참고 그의 볼멘소리를 모른 척하며 말했다.

“일단, 계속 키워봐.”

그는 시위하듯 고양이들의 이름을 끝내 부르지 않았다. 혹여나 이름을 불러서 괜히 정이라도 들어 마음이 바뀌어 버릴까봐. 나는 그런 그를 대신해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새카만 털로 뒤덮인 고양이는 ‘까망’, 하얀 털을 가진 아이는 ‘야니’라고 부르고는 그가 들을 수 있을 만큼 고양이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댔다.

“까망~ 이리 와 봐, 츄르 줄게.”

“야니~ 어디에 있어? 또 숨은 거야? 이리 나와 봐.”

그런 내 노력에도 그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고양이들이 자라면서 ‘우다다의 시기’를 맞이하자, 마루를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의 대찬 발소리에 아랫집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 번도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던 그에게, 그 시끄러운 생명력은 낯설고 불편한 소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혹여 그가 중간에 고양이를 포기할까 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 야니의 중성화 시기가 다가왔고,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비싼 수술비를 피해 자진해서 차로 세 시간 거리의 ‘버지니아 비치’에 있는 동물병원을 예약해 중성화 수술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그 겨울, 나는 야니와 함께 바다로 향했다.


겨울 바다는 인적이 드물고, 바람은 차고 매서웠다. 세찬 파도는 끊임없이 몰려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캐리어 안에 있던 야니를 조심스레 꺼내어 묘생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겨울 바다를 보여주었다.


야니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동공을 확장하며 자기 앞에 밀려드는 거대한 물결을 바라보다가 이내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덜덜 떨었다. 나는 다시 야니를 따뜻한 품에 넣어 병원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반 년이 흐른 지난 일요일, 나는 그와 함께 그 겨울, 야니와 함께 갔던 바다로 향했다. 이제 계절은 바야흐로 봄의 절정에 다다랐다. 겨울 바다는 황량했지만, 여름이 오기 전의 봄 바다는 주말을 맞아 햇살과 파도를 함께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따뜻해진 수온 덕에 바다에 몸을 담그는 이들, 파도 속에서 장난을 치고 웃는 아이들, 선글라스를 낀 채 백사장에 누워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아직 살짝 차갑긴 했지만, 그 청량함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바닷물을 촉촉하게 머금은 모래 위를 젖은 맨발로 바다를 가로지르며 걷다 보니 풍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어느새 나에게 또다른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때 문득, 맨발로 함께 걷고 있는 그가 요즘 들어 매일 내게 고양이 사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양이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침대에 누운 사진. 배를 드러내고 길게 늘어져 낮잠을 자는 모습. 사람처럼 팔을 뻗어 그를 포근하게 껴안은 모습. 그는 다른 듯 같은 사진을 여러 번 다른 버전으로 보내올 만큼 고양이에 푹 빠져 있었다.

처음엔 고양이 한 마리만 고집하던 사람이, 어느새, 그의 일상 속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온전히 품고 있었다. 지금 막 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가 모든 걸 증명해 주었다.

야니가 안 보여서 한참을 찾았는데,

결국 세탁기 뒤에 숨어있는 걸 간신히 찾았잖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토록 부르지 않겠다던 고양이의 이름을, 무심코 입에 올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혹시 그가 머쓱해 할까 봐, 속으로 조용히 혼자 웃었다.

그는 어느새 황량하고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따뜻한 수온으로 사람을 품는 봄 바다처럼 고양이를 품고 있었다. 아직 발끝은 약간 차가운 정도, 그러나 곧 사람을 무한히 품을 한여름의 온도로 그의 바다는 서서히 데워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너무 모른다. 자신이 두 마리의 고양이를 품을 만큼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진짜 소유란,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시작된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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