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예쁜 들꽃처럼

오랜 반목의 시간을 지나

by Miyuki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가는 길. 엄마를 만나러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오래된 감정을 끌어안은 채 마음은 천천히 일렁거렸다. 긴 시간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은 자꾸만 과거로 향했다.


내가 엄마 곁을 떠난 지 벌써 몇 해.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고,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와 엄마 사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나는 사춘기를 그리 요란하게 보내진 않았다. 나는 내 나름의 파동 속에서도 스스로를 길들여가며 무던하게 자랐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실행하고, 때로는 실수도 했다. 크게 실패한 날도 많았지만, 그런 날들이 되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온몸으로 부딪쳐 얻은 것만이 결국 진짜 내 것이 된다는 걸 그때부터 조금씩 배워갔던 것 같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의 커다란 놀이터 같았다. 나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낯선 세상을 마주했다.​


그렇게 혼자 판단하고, 감당하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미 미국에 먼저 정착해 있던 부모님, 특히 엄마는 내가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늘 염려했다. 엄마는 일종의 ‘걱정 인형’처럼 내 삶의 결정마다 이정표와 나침반을 나에게 제시하려 했다. 조언이라기보단 일종의 개입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실패하더라도 내 방식대로 넘어지고 배우는 데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돌아가더라도,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언젠가 내 뼈와 살이 되어줄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곧고 안전한 길을 걷기를 바랐고, 나는 자주 답답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엄마가 알던 세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나는 엄마라는 이름의 가장 큰 권위에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반기를 들었다.


나는 엄마와 가깝게 살던 동네를 떠났고,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게 낯설고 막막했지만, 익숙한 방식대로 내 두 발로 하나씩 밟아가며 또 하나의 삶을 만들어 갔다.​​


그 선택 이후, 엄마와 나는 긴 침묵과 반목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나의 무모함은 엄마에게는 불안함이었고, 엄마의 간섭은 내게는 억압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별 뒤에 남겨진 말들과 그리움이 가슴에 차고 넘쳤다. 나는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그 안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아버지를 이야기하려면 그 사이에 놓인 엄마와의 관계도 함께 써내려 가야 했다.


수많은 날들을 글로 울었고, 글로 토해냈고, 글로 나를 다독였다. 많은 감정을 쏟아낸 만큼, 나는 이제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5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 나는 다시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올랐다.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엄마의 집.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잠깐 나가서 같이 걸어요”

내가 먼저 제안했다.


엄마와 나는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 트랙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5월의 싱그러운 공기, 풍성하게 우거진 나무들. 나는 큰 보폭으로 천천히, 엄마는 작은 보폭으로 분주하게 걸었다. 속도는 달랐지만, 우리는 나란히 함께 걸었다.​​​​


삶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느리게 걷는다. 속도를 맞추지 않아도, 방향만 같다면 각자의 보폭으로도 함께 걸을 수 있다.


오랫동안 서로를 설득하려 했던 엄마와 나. 각자의 방식이 옳다고 맞서 싸웠던 우리는 결국엔 이렇게, 다른 걸음으로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야 우리는 그 긴 반목의 끝에서 조용히 화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길가에 핀 들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꽃 좀 봐. 참 예쁘다.”

나는 물었다.

“꽃이 왜 그렇게 예뻐 보여?”

엄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냥, 이유 없이 예쁜 거지.”

그 말이 내 마음을 툭 건드린다.

자식도 그런 걸까.

그저 예쁘지만 걱정되고, 지켜보고 싶은 존재인 걸까.

알고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자연은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며,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 문장이 엄마의 말과 겹쳐지며, 비로소 가슴에 쿵하고 내려앉았다.

새벽, 어슴푸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올 채비를 한다. 트렁크에는 엄마가 싸준 김치가 가득하고, 떠나는 내 마음도 조금은 후련하다. 오래도록 날카롭게 파여있던 감정의 골은 어느새, 둥그렇게 마모된 능선이 되어 있었다.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삶은 계속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시 걸어갈 것이다. 어쩌면 한 뼘쯤 자란 어른이라는 건 끝내 이해되지 않아도 서로를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빛으로 발갛게 물드는 아침을 담은 창 너머,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내 집이 있는 북쪽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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