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끝을 바라보다.

우주를 노래하던 젊음, 페퍼톤스

by Miyuki

요 며칠, 거스를 수 없는 호르몬의 장난으로 마음이 위아래로 널뛰기를 해댔다. 가만히 앉아 내 기분이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딱히 이유랄 것도 없다. 그냥 시기가 그런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호르몬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버터와 설탕을 듬뿍 넣은 스콘을 구워 그 자리에서 절반 이상을 먹어치웠다. 잠깐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어딘가 허전해서 러닝머신 위에 올라 한참을 땀 흘리며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샤워. 이제야 청량감과 함께 기분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감성과 이성을 오가는 마음의 전쟁이다. 나는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소파에 앉는다.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까만 고양이 '까미'가 스르륵 나를 쳐다본다. 손을 활처럼 둥글려 까미를 한참 쓰다듬다가 일부러 손을 까미 곁에 두고는 가만히 지켜본다.

마음 따뜻한 까미는, 역시나 자신의 털을 정성스레 그루밍하던 그 혓바닥으로 내 손등을 몇 번이고 부드럽게 핥아준다. 자기만 예뻐해 달라고 징징대고, 자기만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뭉치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알고 보면, 뭉치는 한 번도 나를 핥아준 적이 없다. 까미는 정말이지 다정하다묘.

까미의 다정함 덕분에 나는 이제서야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오늘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노트에 한 줄씩 정성스럽게 필사하기 시작한다. 오늘의 BGM은 ‘페퍼톤스’다.

어쿠스틱 기타가 안정적인 화음으로 코드를 쌓아 올리며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 묵직한 베이스가 그 뒤를 잇는다. 곧이어 속도를 높이며 질주하는 기타, 베이스, 전자기타의 레이어들이 만들어내는 꽉 찬 사운드에 내 심장은 적절한 밸런스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의 음악은 내가 피아노로 치는 고음 중심의 멜로디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 차이에서 나는 내가 구현하지 못하는 사운드에 대한 매력을 느낀다. 게다가 그들의 코드 진행은 어디 하나 뻔하지 않다. 긴장감을 주는 서브도미넌트, 예측할 수 없는 우주적 화음의 흐름. 그래서일까, 그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 지구에서 시작해 어느새 우주 끝까지 치닫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사운드, 촘촘하게 쌓인 기타 레이어, 전혀 대중가요답지 않은 낯선 코드들. 묵직하게 엉겨 붙은 기타의 사운드는 낯설고도 혁신적이었다. 알고 보니, 역시나 공대 출신 너드 느낌이 물씬 나는 남성 듀오가 만든 음악이었다.

그렇게 내 젊음을 우주적 사운드로 물들였던 그들이, 어느덧 데뷔 20년 차가 되었다고 한다. 태어난 해가 똑같은 우리들은 똑같이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젊음’, ‘감사’, 그리고 ‘우주’를 노래한다. 수없이 들었던 곡 중 하나, 「New Hippie Generation」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햇살에는 세금이 안 붙어서 다행이야.”
“어디쯤에 명왕성이 떠 있을까?”
“잔디에 누워 우주의 끝을 바라본다.”

오래 전, 나 역시 그 노래를 들으며 햇살 아래 잔디에 누워 하늘인지 우주의 끝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중가요에 ‘세금’, ‘명왕성’, ‘우주’라는 단어가 어색함 없이 녹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 역시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겠다고.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가겠다고. 그렇게 그 시절, 그런 꿈들을 품었더랬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 사상적 경계를 넘어 나는 어떤 틀에도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한다면, 상상 속에서 나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의 삶도, 내가 쓰는 글도, 내가 만드는 음악도 정해진 틀보다는 그날의 마음과, 손끝의 흐름과, 감각이 이끄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흘러가길 바랐다. 그건 내가 힘들 때, 시골집에서 밤낮으로 명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말하던 바람과 닮아 있다.

"경계 없이 자유로운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이제 곧, 호르몬이 널뛰던 감성의 시기를 지나 이성의 영역으로 나는 안착할 것이다. 감성도 좋고, 이성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나는 적절하게 균형 잡힌 지점을 가늠하며 한 걸음씩 성큼 걸어갈 것이다. 그저 흔들리는 마음도, 치솟는 감정도, 차분한 이성도 결국 나를 이루는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궤도 위를 날아가는 별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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