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꺼진 무대 뒤에서
지금 돌아보아도, 그 시절을 떠올려도 참으로 희한하다. 드가의 그림은 흔히 보아온 것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중앙에 초점이 맞춰진 전형적인 구도가 아니라, 어떤 장면의 흐름 중에서 무작위로 잘린 듯한 인상을 준다.
심지어 어떤 그림에서는 화면의 한쪽 모서리에 서 있는 인물의 얼굴이 전체가 아닌 반만 등장하기도 한다. 마치 누군가가 무심히 셔터를 눌러 남긴 순간처럼, 우연에 가까운 구도다. 수백 년 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 구성은 꽤 파격적이다.
알고 보니, 드가는 화가이기 이전에 사진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의 그림에 담긴 시간의 단편들이 왜 그리도 순간적인지 이해가 갔다. 그는 붓으로 시간의 프레임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드가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건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꽤 다양한 도시에서 그의 그림을 만났다. 보스턴의 하버드 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그 어디에서도 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곤 했다. 그가 그의 그림에서 구현하는 색은 빛을 투영해 참으로 화사하고, 생기 있다. 특히나 많은 작품이 발레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건 무대 위의 찬란한 순간만은 아니다. 오히려, 발레리나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몸을 푸는 장면, 리허설 도중 지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 발레 연습을 할 때, 발레봉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고르는 풍경들이다.
마치 연사 카메라로 수십 장을 무작위로 찍은 듯한, 그렇게 일상의 틈에서 포착된 장면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장면들에 매혹된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반짝이는 무대 위의 찰나를 위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리허설과 기다림, 단련의 시간을 견딘다.
창작이란, 그리고 또 삶이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프레임을 성실히 살아내는 가운데 어느 날 불쑥 빛나는 한순간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지루하고, 불안하고,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이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우리의 프레임을 멈추지 않는 것. 한 발, 또 한 발 내딛는 것.
드가의 그림은 말한다. 모든 장면이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고. 조명이 꺼진 무대 뒤에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천천히 기울이며 담담하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그런 장면이야말로, 묵묵히 존재의 시간을 통과하는 우리가 진실로 살아가는 현실 속 프레임이 아닐까.
“가장 평범한 삶 속에야말로 가장 진실한 시가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 Thor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