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파고를 함께 넘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창작의 충동을 느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펜을 들어 글을 쓰고, 목소리로 노래하며,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창조적 행위들은 단순한 취미나 여가를 넘어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처럼 느껴진다.
요즘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삶이 버겁고 팍팍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 때가 있다. 그 감정은 어쩌면 우리 안에 내재된 창조성과 기쁨을 억누르고, 이미 짜여진 시스템에 스스로를 억지로 맞추려 할 때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다. 정해진 규칙과 방식 속에 견뎌야 하는 나날들이 계속되면 창작을 향한 욕망은 점차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더더욱 자발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만든다. 어쩌면 이는 현실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구현하려는, 자유에 대한 내 내면의 갈망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창조적인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꽤나 애를 쓰며 살아왔다. 때로는 막막하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나 혼자의 고집이나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내 안의 열정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 따뜻한 격려와 대화로, 또 묵묵한 동행으로 내 곁을 지켜준 이들 말이다. 창작은 결코 혼자서 감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들 덕분에 배웠다.
그중에서도 유독 오늘, 내 창작의 시작점에 함께 있어준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창작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만남 덕분에 창작은 나에게 단순한 선택이 아닌, 삶을 살아내는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이 떠오른다. 대학교 2학년 때쯤, 어느 교회에서 급하게 피아노 반주를 하루만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오늘 제가 부를 곡이에요.”
내 또래쯤 되었을까? 처음 보는 여성이 내가 앉아있는 피아노 앞으로 걸어와서 악보를 내밀며 말했다. 나긋나긋한 말투와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다. 피아노와 노래라는 조합으로 우리는 그날 처음 얼떨결에 맞춰본 합주에서 처음임에도 뜻밖의 좋은 호흡을 경험했다.
우리는 그 이후,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함께 돈가스를 먹으러 가고, 당시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도 함께 찍었다. 처음엔 그런 우정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단순한 친구 사이를 넘어서, 인생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지지해 주는 관계로 점점 더 깊어졌다.
일상의 권태에 지친 어느 날, 내가 바이올린을 혼자서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녀 역시 주저 없이 바이올린을 사들고 나타났다. 단순한 응원을 넘어, 새로운 길을 나와 함께 걸어가 준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만나 함께 연습했고, 교회의 크리스마스 무대에서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버린 채 연주를 마치고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서로를 바라보며 배를 잡곤 한참을 웃기도 했다.
이후, 내가 회사 생활에 지쳐 회사를 그만두고 작곡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그녀는 흔쾌히 나를 응원해 주었다. 아카데미에서 아이돌 곡을 과제로 만들어야 했을 때는, 내가 만든 아이돌 음악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한껏 발랄한 목소리를 얹어 내 곡을 함께 완성해 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그 여자 작곡, 또 다른 여자 노래’라는 우리만의 재미있는 청춘 영화를 함께 찍은 듯한 추억으로 이제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진심으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태도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자신의 삶에서 길어낸 조심스러운 조언을 건넨다. 나는 우리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그녀 역시 발현되지 못한 열정이 얼마나 깊은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가진 불꽃을 세상이라는 현실 속에서 꺼뜨리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지금 나는 미국에서 그녀는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보컬 레슨을 열심히 받으면서, 가끔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최유리’의 노래를 부른 영상을 보내주기도 한다. 최근 지드래곤 콘서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할 땐, 예전의 우리가 음악으로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글로, 그녀는 노래로. 우리는 요즘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 안의 열정을 불태우며 살아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우리는 결코 창작의 기쁨을 놓지 않는다. 서로의 열정의 온도를 알고 있기에, 가장 고단한 순간조차 서로에게 불쏘시개가 되어준다.
니체는 “예술이 삶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표현하려 애쓰는 건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견딤’을 넘어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불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앞으로도 창작의 기쁨을 놓지 않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그 불을 지펴가기를.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의 삶에서 조금씩 사그라드는 열정의 불씨를 지펴주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세상이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예술처럼 살아가기를.
지난달, 그녀는 내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애정하는 향수를 선물로 보내 주었다. 처음 그 향을 맡았을 때, 그 향이 그녀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달콤하면서도 은은하게 풍기는 꽃 향기, 일상에 치이고, 생활에 지쳐도 언제나 단정하고 고고하게 자신만의 향을 뿜어내던 그녀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그 향수를 뿌릴 때마다, 육아와 워킹맘이라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그녀를 떠올린다. 나는 잠시 멈춰, 그 향을 깊이 들이마신다. 달콤하고 그윽한 향을 깊은 호흡과 함께 천천히 음미하며, 그토록 꿈꾸고 갈망했던 창작의 자리로 나는 다시금 몸을 일으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