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너머의 편견

온라인 너머, 삶으로 다가온 우정

by Miyuki

미국에서 살며 나는 종종 ‘언어’라는 것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무기이자 생존 방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인 내가 영어로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고, 유머를 나눌 수 있을 때 미국 사람들은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친근함을 보이곤 했다.


이 사회에 스며들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우고 말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한국에 적을 두고 있는 대학교의 영어학 전공 과정을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있다.

몇 년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대신 누군가에게 영어를 배우는 언어 교환 프로그램을 하면 어떨까? 도움이 좀 될까” 그렇게 온라인을 기웃거리던 중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앤드류였다.

앤드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었는데, 첫인상부터 밝고 따뜻했다. 그는 한국에서 2년 동안 거주하며 한국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었고, 한국어를 더 깊이 배우기 위해 한국인들만 다니는 교회에 다니거나 요리 학원에 등록해 아줌마들과 교류를 나눌 정도로 한국어 배우기에 열정적이었다.


그 덕분인지 그의 한국어 실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유창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어가 더 유창해지고 싶다며 언어 교환을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언어 교환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만나 각자의 언어를 교환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앤드류는 메릴랜드에 살고 있었기에, 우리가 직접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계속 교류를 이어가면서 대화는 점점 한국어 중심으로 기울었고, 열정 넘치는 앤드류는 한국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 했다.

그 무렵, 나는 엄마와의 독립을 결심하고 사촌 동생이 살고 있는 버지니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한 뒤 앤드류에게 이사 소식을 전했더니, 깜짝 놀라며 자기도 메릴랜드에 살고 있고 내가 있는 곳까지는 차로 단 30분 거리라는 것이다. 나 역시 놀라며, 우리는 드디어 실제로 만나 한국 음식을 같이 먹기로 약속했다. 앤드류는 아들을 데려오고, 나는 조카를 데려가 다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날, 앤드류는 어린 아들을 차로 태우고 운전해서 내가 살고있던 집 앞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늘 온라인에서만 보던 얼굴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반가워서,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서로를 반갑게 안아 주고 악수를 나누었다. 너무나 기쁘고 반가운 순간이었다.


우리는 앤드류가 너무 좋아해서 자주 간다는 한국 식당 ‘토속집’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내부가 인상적인 작은 식당이었다. 우리는 앉자마자 김치전과 생선구이, 비빔밥과 찌개를 주문하고, 두 개의 언어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앤드류의 아들을 위해 영어로 이야기했고, 앤드류는 내 조카를 위해 한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언어가 섞인 따뜻한 식탁이 완성되었다.

그때, 문득 옆 테이블에 앉은 흑인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미국에서는 한식이 인기를 끌고 있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한국 식당을 찾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나도 그 흑인 아주머니와 눈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런데 식사 내내 자꾸만 그 아주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우리 쪽을 자주 바라보았고, 그제야 나는 우리 테이블의 인구 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인인 나, 백인인 앤드류, 그의 혼혈 아들, 그리고 내가 데려온 조카. 누군가 우리를 모른 채 멀리서 본다면, 우리는 국제결혼으로 맺어진 부부가 다양한 혈통의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는 가족처럼 보였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던 순간, 그 아주머니는 내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You guys look so beautiful!”

그제야 모든 상황이 확실하게 이해되었다. 그녀는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보기 드문 인종 구성 속에서도 조화롭고 따뜻한 모습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물론, 미국에 살다 보면 낯선 이들끼리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문화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날, 나는 솔직히 그 아주머니의 칭찬에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우리가 친구였기 때문에 받은 오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당황을 뒤로하고 밀려드는 생각은 그동안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인종을 나누고 서열을 매기며 살아온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사회 안에서 나 역시 소수 인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내 안에는 여전히 어떤 인종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남아 있었던 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한 칭찬을 받는게 어쩐지 당황스러웠다.

미디어와 사회는 특정 인종에 대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하고, 우리는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머릿속에 자기만의 잣대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고 경험해 보면, 그 이미지가 전혀 사실이 아닐 때가 많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사고방식 속에,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단정해온 편견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편견은 생각이 생각을 낳는 방식으로 자라나, 때로는 그 사람을 알기도 전에 판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판단은, 곧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미리 단정 짓는 위험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어떤 장면을 보면 순간적으로 판단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다르다. 그 판단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의식적인 유연함과 열린 시선이 필요하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알기도 전에 섣불리 판단하고 규정한다면, 나는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할까. 그래서 나는 그날의 경험을 계기로,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지으려는 나의 습관을 조금씩 내려놓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서사와 역사를 지닌 존재다. 나는 그걸 알지 못한 채 단 한 마디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일이 얼마나 경솔한지를 그날 깨달았다.

그날 식탁 위에 올려졌던 비빔밥 한 그릇이 문득 떠오른다. 고유한 색과 맛을 가진 재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는 그 비빔의 철학. 모든 재료는 다르지만, 섞일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맛이 된다.


미국이라는 이 낯선 땅에서, 다양한 피부색과 언어, 배경을 가진 우리가 한 식탁에 모여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은 어쩌면 비빔밥 같은 장면이었다.

다름은 나뉨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우리가 서로에 대한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나는 나와 다른 이들을 만날 때 그 비빔의 철학을 떠올려 보곤 한다. 눈에 보이는 재료의 차이보다, 그 속에서 어떻게 조화로워질 수 있을지를 먼저 상상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날, 흑인 아주머니에게 들었던 칭찬이 부끄럽지 않은 날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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