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의 시간표는 무조건 동그라미였다.
바야흐로, 미국 전역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을 보니 문득 오래된 학창 시절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열 살의 여름. 방학을 앞두고 우리는 방학 동안의 ‘하루 일과 시간표’를 그리는 활동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궁금했다.
왜 시간표는 꼭 동그란 원이어야 하지?
네모나 세모, 별처럼 다른 모양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정삼각형 을 쓱쓱 크게 하나 그렸다. 그리고 하루를 8시간씩 나누어 삼등분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딱 맞아떨어졌다. 별 의미없는 시도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삼각형 안에 들어앉은 시간들이 어린 내 눈에는 꽤나 질서 있어 보였다.
그런데 내 옆 짝꿍이 슬쩍 내 시간표를 들여다보더니, “흐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자기 시간표도 삼각형으로 똑같이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스갯 소리로 요즘 같았으면 디자인 저작권이라도 주장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교실에서 유리한 건 빠른 출석번호였다. 그 친구가 나보다 먼저 삼각형으로 그린 시간표를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리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넌 왜 시간표를 이렇게 그렸니?
이렇게 그리면 안 되는 거야. 다시 동그라미로 그려 와!”
그 친구의 삼각형 시간표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선생님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그 시절의 세태가 그랬다. 나는 그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곧 내 차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겁에 질린 얼굴로 삼각형 시간표를 선생님께 내밀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리셨고 금세 상황을 파악하신 듯 물으셨다.
“네가 먼저 이렇게 그린 거니?”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땅으로 기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내 표정을 한참 바라보셨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반골 기질이 생기기 시작한 건.
이건 왜 이래야 하지?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이더라도 내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조금 더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가끔은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즈음 내가 좋아했던 노래가 있다.
바로 〈네모의 꿈〉.
세상 모든 건 네모인데, 왜 사람들에게 “둥글게 살아야 한다”라고만 말할까. 네모난 프레임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어른들은 왜 아이들에게만 유하게,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까.
나 역시 오지선다형과 객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그럼에도 숨통이 트였던 순간들은 분명히 있었다.
내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어른 한 사람,
말도 안 되는 상상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 한 권.
그럴 때마다 ‘그래도 괜찮은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다르게 살아볼 용기가 생겼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어린 날의 질문은 내 삶의 좌표를 스스로 찍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원래 그래왔으니까”라는 말로 굳어진 규칙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은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정말 이게 유효한가? 지금 이 방식이 나에게 맞는가?
AI와 공존하는 지금의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이 ‘질문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정말 그런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그 물음이야말로 우리를 기계와 구별 짓는 인간만이 가진 터치이자,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를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 세우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한 번쯤은
삼각형으로 시간표를 그려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