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무게를 견디는 두 획

by 김윤슬

사람 ‘인(人)’. 두 명의 사람이 등과 등을 맞대고 서로 기대어 있는 듯한 두 획의 한자.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 이 한자가 서로 기대어 있는 선의 모양을 하고 있대요. 기대면 서로 무겁지만, 그 무거움을 기꺼이 서로 받아내 주는 게 사람이라서.”


한 심리상담사의 강의에서 들은 이 말은 한동안 내 마음속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얼마 전 카메라가 비추어주지 못한 사람의 진짜 공허함을 마주한 적이 있다. 독서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한 남자분이 내가 아는 연예인과 굉장히 닮아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연예인은 몇 년에 걸쳐 여러 가지 도덕적인 선을 넘는 사건을 일으켰고, 현재는 활동을 비공식적으로 중단해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인물이다. ‘파워 E 성향’에 호기심도 많아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와! 연예인 A씨랑 너무 닮았어요! 대박!”

“저 A 맞아요. 하하.”


혹시나 하는 생각에 툭 던져본 말이었는데 정말 그가 맞았다. 그리고 그와 두 시간 동안 나눈 대화는 그저 자극적이고 가볍게 소비되는 연예 기사를 보며 내 멋대로 판단했던 그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저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할 것 같았던 그는, 사실 누구보다 낯을 가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했고, 생각이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와, 타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던 그의 모습은 그저 놀라웠다. 특히 그의 이 솔직한 고백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하면서 진짜 친구 한 명 사귈 틈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늘 굉장히 공허하고 또 공허했어요. 그래서 이 공허함을 채우고자 많은 노력을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아마 이 공허함은 그가 유명세를 얻은 뒤에도 채워지지 않았던 거겠지. 유명인임에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그의 진짜 삶이 담긴 고백은,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며 무조건적으로 그를 비난했던 나의 섣부른 오해를 바꾸어 놓았다. 물론 그의 잘못을 옹호하고자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화려하기만 한 무대 조명 뒤에 숨겨진, 남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아픔과 사정이 그들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그저 나와 같은 연약함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던 경험이었다.


항공사를 다닐 땐 법인카드를 앞세워 내지르는 외로운 한 사람의 비명을 매일 들었다. 나는 지점장님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쉬는 날에도 사무실에 나오고, 틈만 나면 법인카드로 밥 먹고 커피 마시자며 바쁜 직원들을 괴롭히던 그. 회사에서 만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는 그 자체로도 편할 리가 없다. 그런데 심지어 그는 내가 재직하던 항공사의 일본에 있는 전 지점에서 가장 이상하기로 유명한 지점장이었다. 틈만 나면 작은 일에도 별 트집을 다 잡아 경위서를 쓰게 했고, 영업일만 해와서 공항의 현장 업무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 채 말도 안 되는 지시만 내리며 직원들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시켰다. 그럼에도 내가 받는 월급의 세배는 족히 받는 그와 그의 권위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그의 법인카드에 끌려가 함께 밥을 먹던 날, 그가 왜 그렇게 직원들에게 매달렸는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근무지에서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타지에 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낯선 일본 땅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친한 한국인 친구 하나 없던 그에게, 출근해서 만나는 한국인 직원들은 그가 유일하게 편안하게 타인과 눈을 맞추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것이다. 그렇게 그가 끈질기게 권했던 점심 식사와 티타임은 사실 “나 너무 외로우니 잠시만 기대게 해달라”는 처절한 SOS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를 향한 날 선 나의 미움은 갈 곳을 잃고 사라졌다.


우리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조차 나를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해 방황하는 인간은 타인의 삶의 맥락을 절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결국 사람 ‘인(人)’은 서로의 진실을 다 모르는 ‘오해’의 상태로 기꺼이 서로의 무게를 견뎌주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록 오해로 이루어진 위태로운 두 획일지라도, 그 기울기를 유지하며 나란히 서 있는 것. 그것이 외로운 인간이 세상을 가장 따뜻하게 살아낼 수 있는 방식 아닐까.



「주피의 음악편지」

'스위트피 - 달빛과 춤을(sax. 김오키)'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타인을 언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타인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편 타인을 왜 이해해야만 할까요?

과연 타인에 대한 배려는 어디까지가 끝일까요?

나 하나 이해하고 챙기기 벅찬 현실에서?

...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 것처럼 매번 드는 생각의 경로입니다.


이해의 필수품은 오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오해를 거쳐 이해에 이르죠. 타인은 더욱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타인은 이해해야 하는 지점 또한 다르겠죠. 내가 아닌 이상 갈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나올 거고요. 내가 살기 위한 지점 이상으로 갈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 지점이 아마 윤슬님이 말씀하신 두 획까지라 생각합니다. 오해를 거쳐 이해의 단계까지, 두 획의 사람이란 뜻에 이르는.


그런데 저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은데요. 이해와 행동으로서의 배려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지점장님을 이해해서 모든 행동을 다 받아주는 것도 답이 아닐 테니까요.


오해가 잘못은 아닙니다. 이해의 전 단계이니 자연스러운 거죠. 이해를 통해 측은지심에 이를 테고요. 이게 '같이'와 '따로'의 영역을 둘 다 챙기게 되는 것이구요.


오늘은 델리스파이스의 리더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 스위트피의 <달빛과 춤을> 골랐습니다.


가사처럼 우리는 홀로 춤을 출 수도 있고 함께 춤출 수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최소한 달빛 그리고 햇빛은 우리와 함께일 테니까요. 담백한 김민규님의 목소리와 김오키님의 두툼한 색소폰 소리가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vpr8lpy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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