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같은 아침의 등교와 밤 11시의 하교. 무려 하루 16시간의 사투. 다음 날 아침이 오면 또다시 리셋. 그렇게 무한반복. 프리랜서 5년 차인 지금의 나에겐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지런함’이 나에게도 있었다.
바로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매일 새벽 5시 30분엔 일어나 씻고, 나보다 더 일찍 눈을 떴을 우리 순영씨가 차려준 밥을 먹고, 그녀가 정성껏 다려준 예쁜 교복을 차려입고 늘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집을 나섰다. 내가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겪어야만 했던 3년의 시간. 그런데 누군가는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살아냈다. 매일 새벽 집의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 아빠가.
생각해 보면 나의 외고 생활은 정말 말도 안되는 오늘의 반복이었다. 특목고 특성상 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다른 학교보다 길었고, 주말에도 자율학습에 꼭 참여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가면 매일 밤 11시. 즉 학교에서 16시간 이상의 시간을 매일 보내야만 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그중 3분의 2를 학교에서 보내다니.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진학이라는 꿈에 겨우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살던 3년. 그런데 그 아슬아슬한 삶을 아빠는 30년을 넘게 한결같이 살아냈다. 내가 겪은 겨우 3년의 고통을 아빠는 10배가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견뎌낸 거다. 그것도 회사라는 차디찬 사회에서.
회사는 본래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곳이라 했던가. 그렇기에 나와 맞지 않는 세상 온갖 유형의 사람들을 다 만나야 하고, 또 예상치 못했던 일은 수시로 터지는데 그걸 반드시 슈퍼맨처럼 해결해 내야 한다. 그야말로 회사 생활이란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과 지혜를 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이다.
항공사를 다닐 때 나는 종교도 없는 주제에 매일 신을 찾았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조금 빠르게 입사했다는 것 하나로 나보다 100년은 더 산듯한 태도로 나를 대하던 선배들, 온도가 살짝만 안 맞아도 부서지는 예민한 도자기 같아서 늘 출근하면 얼굴색을 조심히 살펴야 했던 그룹장. 그들과 함께 시간을 견뎌낸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땐 똑같은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나를 사고 처리 전문가로 만들어주었던 후배들. 고객을 대하는 일은 쉬웠을까? 그럴 리가. 매뉴얼상 해줄 수 없는 요청 사항만 골라 다른 항공사에 탔을 땐 해줬다며 당당히 요구하는 고객들, 갑자기 선글라스를 벗고 “저 누군지 알죠?” 하며 특별 서비스를 요구하던 연예인 승객들 등. (와!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줬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퇴사 이후의 사업은 인생 난이도를 낮춰주긴커녕 오히려 더 높여주었다. 환불 규정을 무시한 채 강의 수강 후 1년 뒤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 새벽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빠른 답장을 요구하는 연락들, 친밀감이 쌓여 정을 주니 뒤통수를 후려치고 잠수타는 고객 등… 또 한 치 앞을 모르는 회사의 돈의 흐름은 “네가 이래도 버틴다고?” 하며 매달 불안으로 나를 옥죄어왔다. 그걸 견디며 비로소 깨달았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빠의 새벽 출근길의 무게를. 그가 사직서를 품고 참았을 30년간의 수많은 1분 1 초들을.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은 녹슬어 버렸을 우리 집 새벽 현관문 앞에서 나는 그를 조금 더 상냥하게 마중해 주고 싶다. 그렇게 그가 그날의 1분 1초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싶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딸에게 책을 사주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는 딸에게 만년필을 사주기 위해, 딸이 원하던 외국어 고등학교에서의 영어와 일본어 전공비용을 마련해주기 위해, 매년 3월 14일 곰인형이 담겨있는 사탕 바구니를 사주기 위해, 생일 때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새 MP3플레이어가 갖고 싶다는 딸을 위해 그가 그저 묵묵히 견뎠을 시간들.
결국 내가 원하고 누렸던 모든 것들은 그가 우리집 녹슨 현관문 너머에서 깎아온 시간의 조각의 대가였다. 철없던 시절의 현관문 ‘안쪽’에 있던 내가, 이제야 ‘문 바깥’의 무게를 알게 되어 건네는 마음. 부디 이제는 녹이 슬었을 현관문 너머 아빠의 고단했을 세월에 돌아가 닿기를.
「주피의 음악편지」
'노브 - 회사다녀요'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노래를 아버지에게 드려야 할지, 윤슬님에게 드려야 할지 많이 고민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 난 노래는 넥스트의 <아버지와 나 Part I>이었습니다.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이 가사가 떠올랐거든요.
윤슬님이 가지는 감사함과 아버지의 따뜻한 자식애에 초점이 맞춰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결국 인간이고 회사원이라면 윤슬님과 똑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 그 힘든 마음에만 초점을 맞춰보자.
가족들에겐 티를 안 내셨겠지만 그도 힘듦이 있고, 싫음이 있고, 귀찮음이 있는 윤슬님과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우리와 똑같은 그는 아버지이자 사람이죠.
회사에서 겪은 어려움도 비슷할 거고요
회사 가기 싫은 마음도 비슷할 거구요
어렸을 때 가진 꿈도 있었을 거구요
그 마음에 대한 위로면 윤슬님과 아버지가 부녀로서가 아니라 회사원 동지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안아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노브의 입니다. 가수 크러쉬의 누나인데요 크러쉬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목소리 톤의 힘은 크러쉬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힘듦을 정말 솔직하고 순박하게 표현했습니다.
자 다 같이 눈물 찔끔이며 서로를 토닥여 보죠.
https://www.youtube.com/watch?v=QvzoEGZ6k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