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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Jan 08. 2019

인스브루크, 티롤 산속의 합스부르크와 스와로브스키

10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오스트리아는 생각보다 가로로 긴 영토를 가지고 있다. 비엔나가 있는 동쪽의 몸통에서 스위스를 향해 길게 뻗은 다리 같은 서쪽 지방 대부분이 티롤 주다. 티롤 주의 중심지 인스브루크(Innsbruck)는 스키를 비롯해서 겨울철 스포츠의 메카였다. 동계올림픽도 두 번이나 했다. 스위스에서 이어진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겨울 여행에 최적화된 도시다. '티롤(Tyrol)'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도 낯이 익다. 한국 내 유명 스키장이나 리조트, 놀이동산에서 겨울 장식을 할 때마다 '티롤 분위기'를 선전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 전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서 티롤은 설경, 스키, 썰매, 눈사람, 크리스마스 등 겨울에 대한 갖가지 즐거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곳이다. 


우리 가족의 여름 여행에서 인스브루크는 잘츠부르크까지 가는 길에 하루 묵는 곳이었다. 여름이니까 잠깐 산 경치 구경, 예쁜 마을 구경이나 하고 넘어갈 줄 알았다. 숙소를 잡고 검색을 할수록 더 머물러야 하는 것 아닌가 갈등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 가족은 겨울 스포츠와는 인연이 없었기에 겨울 관광지에 여름에 왔다고 해서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 알프스 산기슭 도시는 여름에도 볼거리가 넘쳤다. 아기자기하고 관광업만 하는 작은 마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치적인 역사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꽤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눈에 확 띈 키워드는 합스부르크 왕가 궁전과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였다. 잠만 자고 떠나기에는 아쉬웠다. 산 구경하는 케이블카도 있었지만 스위스에서 실컷 봤으니, 여기서는 합스부르크 역사 유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득템을 꿈꾸며 스와로브스키 월드를 일정에 넣었다. 

저녁 어스름에 도착한 인스브루크 거리, 강변 장터에서 월드컵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

전날 저녁나절에 도착해서 어둑어둑해지는 구시가를 한 바퀴 걸었다. 원래는 고즈넉한 구시가 분위기와 석양을 받은 알프스 경치를 보러 나간 거였으나, 저녁은 조용하지 않았다. 러시아 월드컵이 진행 중이었기에 고풍스러운 구시가 곳곳에서도 축구 중계에 여념이 없었다. 거리 축제처럼 큰 화면을 세우고 맥주를 팔아가며 모여서 응원하는 곳도 있었다. 아마도 그 축구 덕분에 무려 저녁 8시가 넘은 거리에도 사람이 있었고, 푸드트럭에서 핫도그를 팔았던 것 같다. 아침에 본격적인 관광을 나섰을 때는 직선으로 뻗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금지붕이 반짝이는 역사 관광 도시가 되어 있었다. 비엔나처럼 수많은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있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산속 작은 도시라고 쉽게 볼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역사는 복잡한 이야기다. 정략결혼으로 영토와 왕위 계승권이 오락가락하는 계보는 따라갈 엄두도 안 난다. 그 와중에 몇 번 정략결혼으로 계승권을 모아서 서유럽 상당 부분과 스페인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와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사람이 막스밀리안 1세였다. 15세기 후반에 유럽 제일의 땅주인이 된 막스밀리안 1세는 인스브루크에 상당히 애착이 있었던 모양이다. 중세 귀족 취향에 맞게 경치도 좋고 사냥하기도 좋았겠으나, 교통수단 열악하던 시절에 제국의 수도를 굳이 이 산속에 둔 건 별로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도상으로는 인스브루크가 동유럽에 치우친 비엔나보다 새로 차지한 서유럽 영토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제국 수도가 되는 바람에 왕궁(Hofburg)도 지었고 왕궁 교회(Hofkirche)까지 딸려 있다. 

아침 시간의 인스브루크 - 황금지붕과 호프부르크 궁전
왕궁 교회의 막스밀리안 1세 빈 무덤

왕궁은 궁전이라기에는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넓은 정원도 없어서, 조금 큰 귀족 저택 느낌이다. 초상화와 프레스코화가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내부 장식이나 가구도 생각보다 소박했다. 그래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겨울궁전으로 자리 잡아서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치세까지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작아도 유럽 왕가의 왕궁이니 바로 옆에 왕실 전용 성당도 있나 보다 했는데, 이 교회는 일종의 묘실이었다. 정중앙에 막시밀리안 1세의 관을 두고 주위에 동상과 장식이 대단히 화려했다. 실제 시신은 비엔나에 있고 이곳은 시체를 안치한 적 없는 빈 무덤이라고 한다. 이 사람 아니었으면 인스브루크는 정치의 중심에 설 일이 없었을 테니 빈 무덤이라도 유료 입장료 받고 관리할 만하다. 


합스부르크라는 역사 속 복잡한 이름보다도 모두에게 즉각 어필하는 인스브루크의 또 다른 키워드는 스와로브스키다. 왕궁 교회 옆에 딸린 티롤 박물관까지 속성으로 둘러보고, 왕궁 입구에 있던 자허 카페(Cafe Sacher) 지점에서 자허 토르테까지 후딱 먹고 인스브루크와 작별을 고했다. 스와로브스키 매장은 시내에도 있지만,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Wattens라는 동네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Swarovski Kristallwelten)가 있다. 이름이 러시아나 동유럽 사람 같지만, 조상이 어디 출신이든 간에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스와로브스키는 본사와 공장 옆에 디즈니랜드처럼 공원을 조성했다. 연간회원권도 파는 가족형 테마파크다. 한 번 들어가 보기에는 입장료가 상당했다. 얼마나 화려하게 해 놨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브랜드에 무관심한 부모님을 모시고 그 비용과 시간을 쓰기는 아까웠으므로 월드 입장은 포기했다. 하지만 역시 물건 파는 게 목적인 회사답게, 기념품샵을 겸하는 대형 매장 입장은 공짜였다. 매장만 오는 사람도 많은지 진입로가 거의 크리스털 제품 박물관이었다. 전시한 크리스털 제품들과 인테리어 구경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큰 스와로브스키 매장일 이곳은 할인 코너도 컸다. 집에 있는 동생 것까지 하나씩 저렴하게 득템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스브루크는 오스트리아에서 다섯 번째 큰 도시고 그 지방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라고 한다. 경제 대부분이 관광이기는 하겠지만, 그저 산속 작은 마을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양한 면을 갖춘 오래된 도시였다. 잠깐이지만 역사 속 제국의 중심도시였다. 스와로브스키 같은 회사가 줄곧 이곳을 터전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현대에도 경제적인 저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프스 산맥의 자연을 이용한 관광과 스포츠의 대명사이기까지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월드의 매장과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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