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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Jan 23. 2019

비엔나 궁전 구경의 하이라이트는 클림트의 키스

2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호프부르크 궁전, 벨베데레 궁전

비엔나라는 도시 이름에서 연상되는 인물, 사건,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기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문화와 예술에서는 근대 유럽의 수도를 자처했을 만하다. 웬만한 유럽 음악가나 미술가들이 한 번쯤 꼭 거쳐가거나 머물던 문화의 중심지였다. 예술이 발달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후원이 가능해야 한다. 많은 궁전과 저택들이 음악과 미술로 채워질 만큼 부유했다. 그게 권력의 상징이 되어서 더 향유하려는 경쟁도 붙었다. 덕분에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가 좋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대표적인 유럽 음악가들의 무덤이 다 비엔나에 있다. 모차르트 무덤은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게 더 관심을 끌어서 많이들 공동묘지에 간다. 17년 전 처음 왔을 때 나도 일부러 공동묘지에 가서 음악가들 비석을 찾아다녔었다. 이번에는 묘지는 관두고 시내에 집중하기로 했다.


볼거리 많은 비엔나에서 하루 동안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광화문 일대의 궁궐 몇 개만 보는 격이다. 시장이나 카페, 음악회 같은 사회성 있는 체험은 언제일지 모를 다음 기회로 미루고, 궁전과 성당 등 상징적인 기념물만 체크했다. 구시가 중심으로 갈수록 화려한 장식이 붙은 건물과 조형물이 늘어난다. 부유했던 제국의 수도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듯 황금색이 유난히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유명한 성 슈테판 대성당이 코 앞에 있었다. 지붕이 화려하기로 유명한데, 너무 커서 그 지붕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제국의 중심 성당답게 내부도 대단히 화려했다. 웬만하면 성당은 무료인데, 여기는 내부에 구획을 쳐서 자세히 보러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그 구획 밖에서 내부를 멀찍이 조망하는 것으로도 화려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화려한 지붕이 유명한 성 슈테판 성당

궁전을 구경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게 마련이어서, 그전에 일반인 집을 한 곳만 들렀다. 다름 아닌 모차르트 하우스(Mozart Haus Vienna) 박물관이다. 순전히 슈테판 성당과 가까워서 낙점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알찬 박물관이었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가 원조를 주장하지만, 비엔나도 모차르트가 제일 인기다. 도처에서 모차르트 콘서트가 매일 있다. 슈테판 성당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는 모차르트는 그 건물 2층에 4년 정도 살았다고 한다. 좋은 위치에 꽤 좋은 아파트로, 소위 제일 잘 나가던 시절에 산 곳이었다. 비엔나에 그가 살던 곳이 여러 곳인데 여기만 남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지금은 당연히 건물 전체가 박물관이고, 모차르트의 음악인생과 사생활을 여러 유품, 모사품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비엔나 문화계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다. 사진 촬영 불가는 아쉬웠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고 내용이 진짜 자세했다. 모차르트가 병이 났는데 당시 의사의 처방이 하필이면 '나쁜 피를 최대한 빼는' 거여서, 결국 피를 너무 많이 빼서 체력 저하로 죽었다는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모차르트 콘서트 광고를 하고 있는 광장을 지나 비엔나의 경복궁 격인 호프부르크 궁전에 들어섰다.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들이 다 그렇지만 비엔나에도 궁전이 여럿 있다. 전날 비바람을 맞았던 쇤브룬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를 필두로 한 황실 여름궁전이었다. 호프부르크 궁전은 겨울 궁전이자 공식적인 정궁이고, 벨베데레 궁전은 별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주인공은 확실히 시시(Sisi) 황후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선대 왕들도 살았겠지만 리모델링이 잦아서 마지막 집주인들의 생활만 그대로 남았다. 더 오래 산 요제프 황제는 생활이 너무 모범적이어서 관광객들에게는 재미가 없다. 시시의 사생활을 최대한 많이 나열한 시시 박물관(Sisi Museum)이 제일 인기 코스다. 시시와 황제 가족이 살면서 꾸몄던 생활공간(Imperial Apartments)이 그다음이다. 그리고 지금도 국가급 연회에 사용한다는 황실 식기 세트 전시실이 딸려 있다. 사진 촬영은 식기 세트 전시만 가능하다.

호프부르크 궁전, 요제프 황제와 시시, 마리아 테레지아 상

제국의 마지막 황후, 절세미녀였지만 원하는 사랑을 못해서 불행했던 여인, 여행을 다니며 갑갑함을 달랬다는 자유로운 영혼, 아들을 먼저 보내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 등등 시시를 수식하는 용어와 스토리는 끝이 없었다. 별 모양 머리핀부터 장신구, 입던 옷은 다 그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역시 예쁘고 봐야 한다... 는 시니컬한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어린 귀족 여인이 수백 년의 무게를 떠안고 망해가는 제국의 궁전에 들어와서 무엇하나 맘대로 못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 정치적인 식견을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데, 결국 상징적 효과를 노렸을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암살을 당했다. 요제프 황제도 오래 살긴 했지만 스트레스로 가득한 마지막 황제였다. 오히려 뒤에 남은 아들이나 며느리는 제국을 없애고 정치적인 개입 없이 편하게 살기는 한 모양이다. 왕궁 뒤 정원에 위세 좋게 반원형으로 지은 '신궁전' 건물은 20세기 초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국에서 사용한 건 몇 년 안된다. 지금은 국립도서관과 박물관이 들어가 있었다.


정궁이라 할 수 있는 호프부르크 궁전은 왠지 답답한 곳이었다. 너무 도심에 있어서일까, 자유로운 영혼 시시 황후가 못 견뎌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오후에 시내버스를 타고 방문한 벨베데레 궁전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느껴졌다. 별궁이라 규모는 훨씬 작고, 조금 큰 저택 같다. 상궁과 하궁이 긴 직사각형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유명한 미술작품들이 많은 곳은 벨베데레 상궁이었다. 다른 이유 다 필요 없다. "클림트의 키스가 거기 있다"는 설명 하나로 갈 이유가 명백해지는 곳이다. '꽃보다 할배' TV 프로그램이 다녀간 지도 얼마 안 되었다. 클림트의 작품 중에 제일 유명한 키스 말고도 유디트를 비롯해 다른 그림도 몇 개 같이 있다. 그의 후배이자 동료였다는 에곤 실레의 그림도 같이 있다. 그들이 오스트리아 사람인 줄 여기서 알았다. 비엔나에서 20세기 초에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도를 하던 그룹이었다. 그때부터 명성을 얻었으며 이 그림들도 처음부터 이곳 갤러리에서 구매, 소장했다고 한다. 마네, 모네, 고흐 같은 다른 나라 그림도 몇 개 같이 있다. 작지만 한참 봐야 하는 곳이었다. 하궁에는 현대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작품과 중세 보물관이 있다는데, 상궁을 한참 보고 나면 지쳐서 하궁까지 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양은 적지만 인상적인 작품이 많은 벨베데레 상궁 미술관

키스 같이 유명한 그림을 볼 때는 괜히 경각심이 들곤 한다. 사실 미술 작품을 보는 개인적인 안목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도 그렇다. 모두가 칭찬하고 조명을 한 몸에 받는 그림은 내 맘에 들거나 말거나 무조건 좋아야 할 것 같다. 다들 좋아하니 좋을 거라고 믿어서 좋게 보이는 건지, 내가 정말 좋다고 느끼는 건지 헷갈리곤 한다. 클림트의 키스도 한 벽을 온전히 차지하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으로 이미 많이 봤던 그림이다. 그런데, 좋긴 좋았다.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그림은 그저 좋으리라 믿고 고민하면서 보게 된다. 클림트의 이 그림은 일단 반짝이는 금색을 보면서 웃게 되었다. 저 사람은 키스를 저렇게 느꼈나 보다 정도로 그 느낌을 보여줄 뿐, 어떻게 느끼라거나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일단 예쁘고, 솔직한 느낌이고, 고민스러운 메시지를 담지 않아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닐까. 키스는 아직 풍요롭던 제국 말기인 1907년 작품이다. 그땐 몰랐겠지만 얼마 후에 1차 대전이 나고 제국이 사라지고 오스트리아는 한동안 어려운 시절을 맞는다. 키스하는 연인들의 옷자락을 빛내는 금색이 왠지 안타까운 향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에곤 실레가 10년 후, 1차 대전 중인 1917년에 그린 '포옹(the Embrace)'도 같이 있다. 어찌 보면 연인들끼리의 비슷한 장면이지만 환상적이거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고 훨씬 절박하고 울퉁불퉁하다.


아침부터 비엔나 구시가와 궁전을 구경하고 다니느라 다리가 아팠다. 그래도 오스트리아가 자랑할 만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분 좋은 그림들이라 천천히 한참 보았다. 쇤브룬이나 호프부르크의 궁전이 크고 멋지고 인테리어가 화려해도, 진짜 좋다는 느낌이 드는 그림 하나가 제대로 걸려 있는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이 이번 비엔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다.

비엔나 벨베데레 상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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