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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Apr 26. 2024

겸손은 미덕(美德)이 아니라 미덕(未德)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공자의 뒤를 이어 유학을 발전시킨 사상가 맹자는 말했다. 사람은 본디 4가지의 본성적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가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두 번째가 자신의 옳지 못한 행실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한 행실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세 번째가 겸손하여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네 번째가 잘잘못을 분별할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고. 이중 사양지심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머릿속에 늘 유념해야 한다. 절·대 지키면 안 되는 것으로 말이다.







© jacobbentzinger, 출처 Unsplash





어느 회사든 회사에서는 돈 벌어오는 부서의 힘이 세기 마련이다. 광고회사였던 전 회사에서는 광고를 집행하는 마케팅 부서의 파워와 해당 본부 이사님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몰랐고 지금 회사에서는 운영본부의 입김이 강하다. 회사의 업종과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부서마다 파워는 다양한데 변함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뒤처리는 있는 대로 다 하면서 나서지 못하는 부서가 바로 회계팀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매년 송년회에서 레인메이커를 선정해서 시상했다. (레인메이커란 비가 내리도록 기원하던 미국 인디언 주술사를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 조직이나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말한다.) 10년을 다녔으니 10번의 레인메이커 수상자들이 있었는데 그 10년 동안 딱 한 번 레인메이커 수상자가 소감을 얘기할 때 회계팀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성과를 내는 부서가 아니다 보니 으레 그런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회계팀은 들러리가 되기 마련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테이블에서 팀원들과 가벼운 대화를 하면서 송년회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수상자가 “늘 복잡한 정산과 이슈에 잘 대응해 주신 회계팀 분들도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버렸다. (이후 해당 부서에서 업무 요청이나 협조가 오면 팀원들이 한동안 웃는 얼굴로 ”아 이 팀은 인정이죠“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 mediamodifier, 출처 Unsplash





회사에서 분기마다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가있다. 여러 부서에서는 분기마다 자신들의 업적과 성과를 뽐낸다. 고객과의 관계에서 실적을 낸 부서도 있고 회사 내부에서 좋은 성과를 낸 사람들도 있다. 이직하고 몇번의 발표는 가볍고 재밌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감탄도 했고 본업 외에 다양한 업무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분기 발표에서는 서운함과 섭섭함이 가득했다. 프로젝트 발표를 할 때 해당 프로젝트마다 참여자들을 모두 적고 기여도에 따라 A, B, C를 부가적으로 작성하는데 이번에 발표했던 9개의 프로젝트에 어느 곳에도 회계팀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그 9개의 프로젝트는 모두 회계팀의 의견 혹은 자문이나 업무에 대한 처리가 있었다. 회계팀의 손을 타지 않은 프로젝트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발표에서 수상을 한 프로젝트 원들도 소감을 이야기할 때 그 누구도 회계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발표를 마친 후 평소 가깝게 지냈던 해당 프로젝트 담당 B 팀장님과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팀장님 너무 섭섭하던데요? “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머리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며 물어본 B 팀장님은 내 이야기를 몇마디 듣더니 ”아차“ 한 모양이다. 무슨 말인 줄 알겠다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멋쩍게 자리로 돌아갔다.







© olenkasergienko, 출처 Unsplash





신입사원 때 팀 K 과장님과 매출채권과 관련된 자료를 리뉴얼 했던 적이 있다.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보고서를 썼다 고쳤다 반복했고 최종 버전으로 완료된 자료를 이사님께 보고하게 됐는데 그 보고 기안에서 과장님의 코멘트는 10년이 넘은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난다. “A 자료는 김유리 사원이 작성한 자료로 좀 더 내용을 넣어서 매월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한 업무에 대해서 내가 했음을 언급해 줬던 K 과장님이 회사 생활에서 절대 흔하지 않은 상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친구들에게서 본인들이 작성한 보고서와 파일을 그대로 이름만 바꿔서 위에 자기가 한 것처럼 올리는 상사가 널리고 널렸다는 일화들을 듣고서야 내가 첫 상사를 정말 잘 만났다고 생각하게 됐다. 또한 세상의 모든 회사 사람이 이렇게 알아서 내가 해준 일을 기특하다고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 tahxro44, 출처 Unsplash





회사에서 겸손은 뭣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팀장으로의 승진이었다. 직책자가 아니었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을 상사에게 인정만 받으면 됐다. 업무를 할 때 실수를 지적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손이 빠르고 일을 곧잘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나는 내가 할 일만 묵묵하게 열심히 잘하면 상사가 그런 나의 노력을 잘 알아주고 평가해 주는 곳이 회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직책자가 되니 일반 사원일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회사 안에도 수많은 조직이 있고 수많은 부서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는데 여기서 팀’장‘이라는 직책의 역할은 우리 팀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지 위에 드러내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우리 팀에서 잘한 것과 팀원들의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 노력과 능력을 당연한 것으로 알아봐 주지 않는다.




직장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이런 정글에서 팀장이 되면서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내 새끼들을 품게 됐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얼마나 잘 품어가며 성장시키는지가 나의 또 다른 과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말 평가에서도 팀원들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이룬 것들이 많은지를 끊임없이 표현해야 한다고 말이다. 부서 특성상 가만히 드러내지 않아야만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시그널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업무와 하고 있는 일을 드러내야 한다. 정글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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