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례식은 내가 직접 볼 수 없고 죽을 때 확인할 수 있는 거라서 사실상 내가 맺는 인간관계는 결혼식과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사와 조사를 한 번씩 겪고 나면 사람이 반쯤 떨어져 나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2020년 결혼식을 하기 전 어디선가 들었던 저 말이 생각이 났다. 33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여자치고는 어린 편도 아니지만 요즘은 더 늦게 결혼하는 친구들도 많고 평균이나 기준이 되는 나이가 없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잘 맞춰서 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먼저 결혼을 한 친구들도 있고 직장동료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결혼을 앞두고 걱정했던 문제는 청첩장이었다. 어떤 사람한테 연락해야 하는지 결혼식 전날까지도 고민했던 친구 K가 떠오른다. 나는 평소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가부가 확실한 편이기에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사람 인생사 어떤 것도 속단할 수 없다. 직접 그 입장이 돼보기 전까지 확언해서는 안 된다.. 겪어보지 않은 일에 가타부타 했다가는 직접 그 상황에 놓였을 때 가불기 (가드 불가 기술의 약자로 게임에서 가드를 쓰더라도 절대 막을 수 없는 기술이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을 말하는 게임용어다)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다.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을 줄 때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일단 직장 사람 관계였다.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는 사람한테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직장 상사와 앞선 선례를 참고해서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줄까 말지 고민이 되는 사람이라면 일단 주면 된다. 그 사람이 결혼식에 올 거라고 생각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회생활이다. 경조사를 알리는 것이 같은 직장동료로서의 예의고 그 경조사에 올지말지는 상대방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결혼식을 치르며 얻게 된 꿀팁이 하나 있다.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싶은 직장동료에게는 결혼식 이후 복귀했을 때 가벼운 결혼선물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경험한 좋은 예시로 내가 신혼여행 후 회사에 복귀했을 때 타 본부 실장님과 팀장님에게 겪은 일이다. 결혼식에 아쉽게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시며 머그컵과 핸드크림을 선물로 주셨는데 그 선물을 전달해 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지금도 그 머그컵은 잘 사용하고 있고 핸드크림도 야무지게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도 결혼식 참석 여부가 어정쩡하게 걸리는 동료들의 결혼에는 결혼선물을 준비해서 전달하고 있다.
1) 내가 축의금을 줬지만(친한 여부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연이 끊겨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지인.
2) 과거에는 친했지만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않은 지인.
3) 간간이 연락은 하고 친하지만 절친은 아닌 지인.
자주 연락하고 친한 사람들 관계에서는 고민할 것이 없었지만 세 분류의 사람이 문제였다. 나는 평소 어떤 고민을 하든 알고리즘을 그리면서 차근차근 도식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고민을 할 때도 비슷했다.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매몰 비용 (매몰 비용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용. 즉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을 한 이후에발생하는비용 중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하는 경제학 용어) 을 고려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1번 분류의 사람에 대한 결정을 끝낼 수 있었다. 과거에 내가 냈던 축의금은 매몰 비용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비용으로 과거의 그 당시 내 기준으로 상대방이 내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내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말자. 첫 번째 질문으로 1 분류 사람을 2 분류로 포함할 수 있었다.
두 번째상대방에게 경조사 연락이 왔을 때 기꺼이참석할것인가?
이 질문을 통해서 3 분류의 사람이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었다. 현재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에게는 일단 알리자. 그리고 그 결정 역시 그에게 맡기자는 것이었다. 마지막 2 분류의 사람이 문제였다. 두 번째 질문으로 결정하려고 했더니 모두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하지만 뭔가 께름칙했다. 3 분류 사람처럼 확실하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친한 K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실제로 내가 어떤 2 분류 사람으로 고민하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조사는 알리는 거라고 하잖아요. 저도 연락을 받으면 갈 것 같긴 한데 왜 계속 고민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음... 경조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걸 계기로 앞으로도 지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을 의지가 너에게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이 이후에 이게 계기가 돼서 다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지금처럼 비슷하게 연락을 끊고 산다면 그 인연을 이어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사실 속마음을 너무 확실하게 읽힌 것 같아서 뜨끔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아마 이 이후에도 나는 그 사람과 연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K 선배는 그런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았다. 이 조언을 기준으로 나는 2 분류 사람 중에 결혼식 청첩장을 준 사람이 있고 주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마지막 세번째 질문은 내 결혼식 이후로 내가 인연을 이어 갈 노력을 할 것인가 여부였다.그리고 그 결정은 너무 정확하게 K 선배가 말했던 것과 딱 맞아 떨어져서 결혼식 이후에도 2 분류 사람들은 3 분류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도 친구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을 줄 때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할 때 나는 K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을 똑같이 해주고 그 결과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을 모두 돌리고 고민이 없어졌다. 그 사람들이 결혼식에 오든 오지 않든 그건 그들의 선택이고 내게 연락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전달했다는 뿌듯함만 가득했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확신하면 그에 맞는 불확실성을 던져주며 자신감을 비웃는다. 결혼식이 끝나고 축의금을 정리하던 중 축의금 봉투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름을 발견하며 깜짝 놀랐다. 대학 동기 H의 이름으로 축의금 봉투가 들어 온 것이다. 수백명 지인 중에 딱 한 사람. H의 이름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연락하고 만난 건 6~7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축하를 해 준 것인지. 봉투를 확인하자마자 문자를 보냈고 그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사람 인연은 참 얄궂게도 어떤 사람과의 관계는 사소한 계기로도 끊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과의 관계는 사소한 계기로 다시 이어가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완전히 끊어버린 인연의 끈이라는 표현보다는 언젠가 내가 다시 잡고 싶어질 수도 있는 놓아버린 끈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