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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Sep 18. 2020

글 쓰는 사람 김리밍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알람 소리에 일어났고, 부스스한 얼굴로 출근을 했고, 모닝커피도 한잔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일자로 걷기가 어렵고, 속이 울렁대며 구토가 났다. 심장은 얻어맞은 것처럼 마구 쿵쾅댔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 사물이 두 개로 보이고, 컴퓨터 모니터가 얼굴 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자비하게 뒤흔들어댔다. 어렴풋이 남은 의식으로도 평소와 다르다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보여집니다.”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널뛰기를 해대는 통에 심장 언저리가 뻐근했다. 사람들이 그냥 건네는 말 한마디도 나를 향한 비난으로 들리고, 저들끼리 얘기하는 소리에도 몸이 제멋대로 움찔댔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흐리멍덩해졌다.


하루 24시간, 눈을 뜨나 감으나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저 거미줄같이 얽힌 생각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라고 하셨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휴직을 선택했다. 평소와 다른 생활이 시작됐다.

 

갑작스런 휴직으로 평일 낮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친구들도 모두 일하는 시간이니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아왔던 터라 혼자라는 것이 어색하고, 울컥하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나를 왕따로 생각하진 않을까?” 괜히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이겨내 보자는 의지를 다지며 혼자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차차로 늘려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두리번대지 않게 됐다.


가만히 변화하는 심장의 리듬과 마음의 어둠을 들여다보다 보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엔 그렇게 예리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내 속에서 내는 소리에는 등한시했던 벌로 몸과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정신을 집중시켜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네가 좋아하는 건 뭐니?“

물었더니 책과 책이 있는 공간, 책방을 좋아한다고 한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니?“

물었더니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대지만 ”나는 이런 어둠을 마주했노라, ”나도 이런 터널을 건너고 있노라 말하고 싶다.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면  글들을 모아 미니북으로 만들어준다는 클래스를 찾아 매일 글을 썼다. 죽어도  써지는 날에도 오랜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기어코 한편의 글을 완성시켰고, 유난히  써지는 날에는 날아갈  가벼웠다. 글을 쓰는 동안은 눈이 맑아지고 주변이 밝아지는 황홀함이 가득 찼다. 더불어 미션을 성공하고 미니북을 손에 쥐었을  작가가  듯한 뿌듯한 기분이란!


나는 글 쓰는 사람 김리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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