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알람 소리에 일어났고, 부스스한 얼굴로 출근을 했고, 모닝커피도 한잔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일자로 걷기가 어렵고, 속이 울렁대며 구토가 났다. 심장은 얻어맞은 것처럼 마구 쿵쾅댔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 사물이 두 개로 보이고, 컴퓨터 모니터가 얼굴 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자비하게 뒤흔들어댔다. 어렴풋이 남은 의식으로도 평소와 다르다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보여집니다.”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널뛰기를 해대는 통에 심장 언저리가 뻐근했다. 사람들이 그냥 건네는 말 한마디도 나를 향한 비난으로 들리고, 저들끼리 얘기하는 소리에도 몸이 제멋대로 움찔댔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흐리멍덩해졌다.
하루 24시간, 눈을 뜨나 감으나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저 거미줄같이 얽힌 생각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라고 하셨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휴직을 선택했다. 평소와 다른 생활이 시작됐다.
갑작스런 휴직으로 평일 낮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친구들도 모두 일하는 시간이니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아왔던 터라 혼자라는 것이 어색하고, 울컥하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나를 왕따로 생각하진 않을까?” 괜히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이겨내 보자는 의지를 다지며 혼자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차차로 늘려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두리번대지 않게 됐다.
가만히 변화하는 심장의 리듬과 마음의 어둠을 들여다보다 보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엔 그렇게 예리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내 속에서 내는 소리에는 등한시했던 벌로 몸과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정신을 집중시켜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네가 좋아하는 건 뭐니?“
물었더니 책과 책이 있는 공간, 책방을 좋아한다고 한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니?“
물었더니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대지만 ”나는 이런 어둠을 마주했노라“고, ”나도 이런 터널을 건너고 있노라“고 말하고 싶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면 쓴 글들을 모아 미니북으로 만들어준다는 클래스를 찾아 매일 글을 썼다. 죽어도 안 써지는 날에도 오랜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기어코 한편의 글을 완성시켰고, 유난히 잘 써지는 날에는 날아갈 듯 가벼웠다. 글을 쓰는 동안은 눈이 맑아지고 주변이 밝아지는 황홀함이 가득 찼다. 더불어 미션을 성공하고 미니북을 손에 쥐었을 때 작가가 된 듯한 뿌듯한 기분이란!
나는 글 쓰는 사람 김리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