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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Aug 19. 2021

공존

셋, 책일기

영지님, 팅팅님! 제가 돌아왔어요! 큰 사건이 두 가지나 있었어요.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병원을 드나드느라 2주일이 지났고요, 그사이 펼쳐 들지 못했던 책들 사이에서 먼지다듬이가 생겨서 퇴치하느라 곤욕이었어요. 엄청 작은데 살짝 건드리면 막 빠르게 움직이는 먼지 같은 벌레 있잖아요. 흔히 책벌레라고 하죠? 책이 수십 권 있지만 벌레가 생긴 건 처음이에요. 지독하게 불행한 몇 주를 보냈어요.

 

건강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지는 사이 머릿속으로 ‘행복’이란 단어를 곱씹어봤어요. 내가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글을 쓰고, 돈을 쓰고? 그런데 기력이 달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지 못하는 처지가 괜히 더 불행한 거 있죠? 행복과 불행을 번갈아 씹다가 문득 행복이 곧 불행이고, 불행이 곧 행복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행복과 불행은 극과 극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지독히도 닮은꼴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앗 그런데 지금 막 드는 생각 하나. 돈 쓰는 게 행복이라면서 가만히 누워 병원비로 돈을 쓰는 건 전혀 행복하지 않네요? 이거 봐요. 행복과 불행은 공존이라니까요.


영화 <서복> 보셨나요? 주인공 서복이 말해요. “참 이상하지 않아? 사람들은 내일 아침 당연히 눈을 뜬다고 생각해.” 팔뚝에 소름이 찌르르 돋을 정도로 와닿는 장면이었어요. 저에게 행복은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하게 당연히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겐 아침에 일어나 사지육신 멀쩡하게 출근했다가 고운 하루를 보내고 다시 사지육신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게 행복이었어요. 온몸이 뒤틀리게 아프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나니 당연하던 그 순간들이 행복했구나 느낀 거예요.

  

언젠가 친구가 말했어요. “안 행복해. 나도 행복하고 싶어.”

저는 대답했어요. “안 행복할 이유가 없는데?”

골똘히 생각하던 친구가 다시 말했어요. “맞네, 안 행복할 건 또 없네.”    


우리는 무언가 거대하게 즐겁고 신나는 일이 일어나야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게다가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일들이면 좋겠고요? 한입에 쏙 들어갈 작은 쿠키 하나도 충분히 달콤하고 훌륭한데 커다란 케이크 한 판을 부러워해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외면하고 굳이 다른 것을 찾아 불행을 느끼려고 해요. 팅팅님의 글처럼 우리는 완벽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을 필요도 없는데 말이에요.

 

저는 기꺼이 행복을 맞이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다급하게 쫓거나 움켜잡으려 애쓰는 대신 잠시 숨을 고르고 지금 제 곁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행복들을 하나씩 들여놓으며 살고 싶어요. 사실 저는 너무 커다란 행복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제 앞으로 일확천금이 배당되거나 오백 살까지 살 수 있게 된다 해도 저는 불안에 시달릴 성정이에요. 갑자기 주인이 나타나서 다시 가져가면 어쩌지, 오백 살까지 살면서 수없이 몸이 아플 텐데 그때마다 어쩌지 하면서...


큰 행복을 맛본 뒤엔 아주 작은 아쉬움도 큰 불행으로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한 이슈에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평범하고 평온한, 그래서 때로는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잔잔한 삶을 살고 싶어요.

   

친구들, 저는 지금 몸뚱이가 아파서 불행해요. 그래도 아프다 아프다 징징댈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행복하네요? 역시 행복과 불행은 공존이에요.


정돈되지 않은 글들로 친구들의 정신까지 흔들어 놓는 글을 써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유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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