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산여자김작가 Apr 26. 2019

이사하는 날

(feat. 부부라는 이름으로)

 


 내 삶에 결혼은 여러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결혼을 핑계 삼은 독립. 34년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과 떨어져 산 적이 없는 터라, 신혼집으로 이사 오는 날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그토록 원했던 결혼이었는데 막상 집을 떠나려니 그렇게 밉던 아빠도 눈에 밟히고 엄마를 생각하니 눈이 시렸다. 진짜 결혼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 아빠 집을 떠나 우리의 집으로 이사 왔다.


 이사 온 날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 신기한 일이었다. 끝없는 살림살이를 하나 둘 정리하고 부지런히 도 쓸고 닦고 치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가지 않은 곳이 없는 신혼집이라 그런지 더 애정이 갔다. 특별하지 않아도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이라 더 재미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리는 것조차 신이 났다. 내 남편, 내 가족, 내 집이란 생각이 들자 소소한 것조차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라면만 먹어도, 매일 지지고 볶아도 온전한 내편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어린 시절 불완전한 가정환경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나에게 결혼이 주는 안정감은 꽤 크게 다가왔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고기반찬 안 먹어도 그냥 배부르고 믿음직스러웠다. 그게 부부인가 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종이 한 장 차이의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우린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무척 궁금해지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쓰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