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님은 내가 선택할게

전 세계 아가들의 선택

by 김잔잔

1.

먼 미래, 과학자들은 몇 세기 동안 수억 명의 아기를 대상으로 연구한 끝에 '아기 언어'의 존재를 알아낸다. 갓난아이들이 빽빽 울어대거나 옹알이하는 게 모두 완벽한 형태의 '말'이라는 것.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지능과 사고가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발달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토실토실한 살로 뒤덮여 방긋방긋 웃고 똥 싸던 시절이 사실은 우리 인생의 가장 스마트한 리즈시절이라니.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출산 후 터뜨리는 울음을 번역해봤더니 주로 3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었다.

"쓰벌, 의사양반 나 너무 힘들다"

"어쨌거나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거, 아버지 탯줄 좀 곱게 자르슈"

(이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너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된 나머지 1급 기밀문서로 분류되어 100년 후 공개되었다.)


2.

이러한 결과가 전 세계에 알려지자 제일 먼저 과학계가 뒤집어 자빠졌다. 단번에 'BABY'는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부모들은 쉴 새 없이 침을 흘리는 우리 아기가 그럴 리 없다며 웃고 지나갔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된 100쪽을 웃도는 문서 전문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도 점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에 생각이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후속 연구가 연이어 발표된 것이다. '한 갓난아기의 증언'이라는 타이틀을 단 연구는 더욱 말도 안 되는 비밀을 담고 있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이 아이의 증언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러하다.

3.

"아니, 그러니까 일단 엄마 앞에서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긴 채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데로 가시죠. 네 네, 엄마는 두 시간마다 들어오시는 걸로. 나 모유는 제깍제깍 먹어줘야 된다고"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되나? 일단 내부고발의 핵심은 이거예요. 부모들은 선택받습니다. (연구진은 경악했다.) 같은 일시에 태어난 아가들은 한 공간에 모여 다 같이 예비부모들을 소개받아요."


말을 마친 아기가 통통한 손가락을 몇 번 휘두르자, 대기하던 연구진 중 한 명이 공갈젖꼭지를 대령했다. 아기는 목이 탔는지 열심히 공갈꼭지를 빨아재낀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재빨리 다른 연구진이 침 범벅이 된 물건을 수거해가고 새 것을 손에 쥐어주었다.)


"아기들 앞에는 각자 두 가지 버튼이 있어요. <선택>과 <랜덤>인데, 그야말로 지가 선택한 사람으로 배정받길 원하면 선택을 누르고, 랜덤 배정을 원하면 랜덤을 누르는 거예요. "


연구진이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 거죠?


"허, 사람 참 급하기는. 지금 그 말 하려던 참이에요. 그 방은 부부가 살아온 인생이 그대로 기록된 데이터로 가득 차 있어요. CCTV처럼 낱낱이 보여주지만 이름과 얼굴은 없는 그림자같아요. 오로지 언행만으로 재구성된 재연 드라마 같달까. 쉽게 말하면 예비 부모가 매일 폭력을 일삼는 사람인지, 도벽이 있는지, 집착이 심한지, 가난해도 올곧게 살아온 사람인지 다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연구진 중 작년에 엄마가 된 P씨가 입을 막았다. 나 어떡해.


"고르는 시간은 무한정인데 이것도 선착순이라 머리 잘 써야 돼요. 뭐 사실 아기 성격은 대충 여기서 다 나옵니다. 급한 놈들은 대충 앞부분만 보고 고르거나, 어떤 애들은 보지도 않고 랜덤부터 누르거든요. 그래서 저런 놈도 부모가 돼? 싶은 놈들도 뽑히는 거예요. 선택받아서가 아니라, 랜덤으로 재수 좋게"


같은 부모를 동시에 고를 경우는요?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굿 퀘스쳔. 끝날 때까지 치열한 토론을 벌입니다. 그 사이에 좋은 부모 다 채갈 수도 있어서 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어요. 뭐, 그래도 집요한 애들이 있긴 있죠."


질문한 사람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였다.


"암튼 태어나서 부모 잘 못 걸렸다고 욕하는 애들, 사실 웃긴 거지. 아니, 그러니까 기회 줄 때 데이터를 잘 보고 고르던가. 근데 그중에 타고나길 꼼꼼하고 착실한 애들, 걔들은 데이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요. 무서운 집중력으로 한 명 한 명씩 재끼다가 기어코 원하는 부모를 찾아낸다니까요."


아가가 동그란 머리를 도리도리 하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 대신 아기를 안고 있던 연구진이 자기도 모르게 부드럽고 통통한 볼을 쓰다듬자 증인은 예민하게 그를 째려보며 공갈젖꼭지나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취향도 가지각색. 우리 부모님만 해도 봐봐. 사실 나도 한 16번째인가? 딱 졸기 직전이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나온 거야. 말투는 그렇게 상류층이 아닌데 웃기고 행복해 보여서 냅다 '선택'눌렀지. 태어나보니 가난해서 좀 힘들더라고."


밖에 있는 부모님은 알아듣지 못할걸 알면서도, 아기는 소리를 낮춰 말했다.


"사실 그래서 이 인터뷰도 보탬 좀 될까 하고 신청한 거고. 돈은 바로 계좌 입금 맞지?"


4.

이후로도 그는 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장장 6시간 동안, 3번의 모유 수유 브레이크 타임을 갖으며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증언한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연구진은 최초 증언을 시작으로 다른 아기들에게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고 증언의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세상에 발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박빙의 토론 끝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우세했고 극비 문서로 봉인하여 약 백 년 후 공개하기로 잠정적 결론이 났다. 난임이나 불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선택받지 못한 부모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실이 부모에게 '니가 선택했으니까'라는 비정상적인 빌미를 제공하며 자식을 해치는 합리화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서가 비밀리에 부쳐진 백 년 동안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고통받았다. 마약 중독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 시도 때도 없이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이, 그리고 자식을 소유물처럼 다루는 부모에게 평생을 휘둘리는 아이까지.


5.

연구진은 백 년 뒤 이 문서를 공개됐을 때를 위해 다음과 같이 글을 덧붙였다.

"부디 본 연구가, 아이를 갖고자 하는 부모에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부모라는 이름이 갖는 무거운 책임감과 자격을 통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이가 찾아온다면, 아이의 판단이 후회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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