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노래 빼고 다하는 가수

by 김잔잔

여기 한 가수가 있습니다.

내는 곡마다 줄줄이 음원차트에 올라가지도 않고 꽃미남 꽃미녀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우리 동네 야채트럭에서도 틀어놓고 공부하는 수험생 이어폰에서도 흘러나오고 등산하는 아주머니도 흥얼거리는 노래를 해요.


근데 무슨 노래 제목이고 가사들이 다 좀 재밌어요.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이 아니어서 좋고 허구헌날 비슷한 레퍼토리를 담은 사랑 노래가 아니어서 좋아요. 더 웃긴 건 노래 제목이 요즘 트렌드처럼 '드럽게 길다는 거'.


제 플레이리스트 속 최애 곡으로 예를 들자면

"인간적으로 너라면 출근하고 싶겠니" 뭐, 이런 느낌의 곡들이랄까?


제목만 봐도 일단 재생해보고 싶은 노래를 뽑는 건 물론이고 4분이 후딱 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화려한 고음을 내는 것도 아니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풀 세팅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요. 두꺼운 화장으로도 불편한 하이힐이나 깔창으로도 어떻게 비벼볼 수 없는 편안한 매력과 멋진 노래에 자꾸 손이 가는 건 아이고 어른이고 다 똑같나 봐요.


오피셜 뮤비는 없습니다. 그건 듣는 사람들의 몫이라며 남겨두고 싶다나. 그래서 노래 제목을 쳐보면 여러 버전의 뮤비를 보는 재미가 있어요. 같은 노래인데 각자 느낀 대로 삘받아 만든 일반인ver 동영상이 한 곡당 백 개가 넘는다니까요. 저도 허구한 날 연인이었을 때를 아련하게 추억하며 갑자기 남주랑 여주가 숨어 우는 뮤비가 지겨울 때 종종 찾아봅니다.


이 가수에 대한 '카더라' 썰은 여러 개인데 직접 자기 입으로 밝힌 건 몇 개 안돼요. 그중 하나가 소속사가 자꾸 사랑 노래만 주니까 다른 게 하고 싶다며 박차고 나왔다는 얘기입니다. 그 뒤로 지친 이들에게 사이다를 주고 싶다며 다양한 주제로 가사를 직접 쓰나 봐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래요. 남자 아이돌은 왜 맨날 누나를 뺏기고 싶지 않다는 둥 남자로 봐달라는 둥의 이야기만 쓰고 여자 아이돌은 얼른 내게 고백해보라고 낚싯대를 던지기만 하냐는 겁니다. 세상에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의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 '경비원과 길냥이' '택시운전사와 승객' ‘아빠와 아빠의 아빠’ '부자와 더 부자" '늙은 사람과 더 늙은 사람' 다양하게 노래에서 담을 수 있는 일상의 짝꿍들이 차고 넘쳤잖아요. 진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해보는 것, 그런 신선한 시도가 대중들의 귀를 대신 시원하게 파준 게 아닐까요?


그래서 도대체 누구냐고요. 홍대병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진짜 저만 알고 싶었는데 이왕 유명해진 거 큰 맘먹고 제 최애 플레이리스트 전곡 공개합니다.


1. 살쪘다는 말은 무례하고 말랐다는 말은 아니라는 놈들에게

2. 잘 나가는 이 세상 헤비급들을 위한 노래

3. 인간적으로 너라면 출근하고 싶겠니

4. 내 키에 너가 1cm라도 보태준 게 있다면 지금 말해

5. 받아 적으세요. 명절 땐 다들 입조심

6. 이미 알고 있어 그냥 자고 싶다 말해

7. 미안할 말은 그냥 안 했으면 좋겠는데

8. 여기까지 버틴 고학년들을 위하여

9. 월세는 밀리고 전세는 안되고

10. 웬만하면 우리 엄마는 건드리지 마(세트-아빠ver)

들어보시고 각자의 최애 곡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이상입니다.


2020.4.16 오늘의 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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