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 인해 대를 이어온 아픔에 대하여
노란색 하늘에 좁쌀 같은 흰꽃이 우수수 흔들렸다.
여자는 잠깐 어지러워 걸음을 멈추고 꽃무늬 양산을 바로 잡았다. 양산 밖으로 무섭게 내리쬐는 칠월의 여름 햇살이 뜨거웠다.
여자가 잠깐 멈춰있는 동안 땀방울이 등을 타고 지나갔다. 공기는 사막처럼 건조했고 바닥에서는 뜨거운 열이 지글대고 있었다. 여자가 걸음을 멈추자 나란히 걷던 남자가 조심스레 괜찮냐고 물었다.
여자는 머리 위로 넘겼던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 쓰고 괜찮아, 짧게 대답했다.
들꽃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자욱하게 피어있는 어느 시골길을 계속 걸어가자 커다란 건물 하나가 눈에 보였다. 그 앞에 '평화 박물관'이라는 글자가 표지판에 쓰여 있었다.
여자는 곁눈질로 남자의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그 글자에 압도당한 사람처럼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여자가 앞장서 걷자 남자가 천천히 뒤따라 걸어와 그녀를 따라잡았다.
성인 2명이요.
매표소에는 그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고 더운 바람이 한차례 미지근한 공기를 몰고 지나갔다.
창구가 너무 작아 거스름돈과 표를 주는 직원의 손밖에 볼 수 없었다.
여자가 표를 받아 그의 손에 하나를 쥐어주자, 남자는 그 표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여기 계세요. 들어가시기 전에 영상 하나 볼게요.
어디선가 낯선 사람이 나타나 안내를 해주었고 곧 그들은 학교 강당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암막 커튼이 창문마다 쳐져 있고 내부는 어두 컴컴했다.
밖이 너무 밝았던 까닭에 여자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단상 위에는 큰 스크린이 있었고 그 밑으로 파라솔 의자 같은 간이 플라스틱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자연스레 마지막 줄의 중간쯤 앉았다.
뒤따라 몇 명의 관광객들이 더 들어왔지만 그들을 포함해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은 6명 정도였다.
둘은 영상이 시작되기까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남자가 두 손을 불끈 쥐고 뭔가를 참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여자는 그 위에 자기 손을 조심스레 포개었다. 그리고 괜찮다는 뜻으로 가볍게 두 번 두드려주었다.
남자가 주먹을 풀고 이번엔 여자의 손을 꽉 쥐었다. 그 사이 영상은 시작되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TV에서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리포터와 피디가 전국 방방곡곡 특이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 프로였다.
산속을 헤매는 중년 여자의 모습이 먼저 나왔다. 리포터가 뭐하냐 묻자 그녀는 남편을 찾고 있다며 깊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산속에 숨겨진 깊은 굴을 따라 들어가니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흐르고 박쥐들이 따닥따닥 무리를 지어 붙어있었다.
여보, 여보!
동굴 안에서 여자가 몇 번 외치자 어디선가 나 여기 있어, 라는 답이 들렸다. 소리를 따라 리포터와 여자가 개미굴 같은 미로를 더 들어가자 남편이 먼지 속에서 굴을 파고 있었다.
남자는 리포터가 찾고 있던 사연의 주인공으로, 배가 조금 나오고 얼굴이 붉은 중년 아저씨였다.
여자는 스크린을 한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시골에 사는 선한 작은 아버지 같았다.
리포터가 왜 굴을 파고 있냐고 묻자 그는 아버지에게 죄송해서라고 했다.
그의 집을 따라가 보니 심히 병들고 마른 백발노인이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노인을 위해 중년 남자는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영근이 왔어요.
노인은 앞이 안보였지만 입을 뻐끔대며 겨우 사그라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영근이 왔냐.
중년 남자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산속에 숨어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땅굴을 파는데 동원된 청년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물한 살에 산에 들어가 2년 반 동안 햇살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어두컴컴한 땅굴을 파느라 눈이 멀어버렸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된 후 다시 마을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있던 젊은 청년은 동굴에서 이미 온몸이 세균에 감염되어 햇빛을 보면 몸 전체가 부어오르고 아파왔다. 아버지는 땅굴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햇빛을 그 후에도 영영 볼 수 없게 돼버렸다. 정상적인 밥벌이를 할 수 없던 그를 대신해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기도 전에 일을 배우고 화물차를 운전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아들이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얻었을 무렵, 돌연 모든 일을 그만두고 가진 재산을 모두 쏟아부어 아무것도 없는 산을 사들여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모두 미쳤다고 그를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버지를 생각하며 막힌 땅굴을 다시 파내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어느덧 오십이 넘어가는 남자가 울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굴을 십 년 넘게 파면서, 아버지가 혹은 또 어떤 이의 아버지들이 썼을 유물들을 손수건으로 곱게 닦아 보관하며 그는 당신의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 판 땅굴과 증거 자료를 모아 전쟁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만든 박물관이 이곳 평화 박물관이라는 설명과 함께 영상이 끝났다.
강당에 불이 켜지고 안내원이 등장해 땅굴을 보러 갈 차례라고 했다.
여자는 애써 남자 쪽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의자에 못이 박힌 듯 앉아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강당에 다시 불이 꺼질 때가 돼서야 남자가 조심스레 일어났다. 한 순간 휘청거리는 그를 여자가 조심히 부축했다. 초췌한 얼굴에 눈물이 말라 있었다.
비탈진 산길을 여름 햇살을 받으며 둘은 걸어 올라갔다.
영상을 보고 난 후부터 쭉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여자는 묵묵히 길을 올라갔다. 땅굴의 입구에 가까워지자 땅만 보고 걷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 많이 말랐다.
여자는 짐작하고 있었으나 마음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땅굴의 입구는 생각보다 좁고 캄캄했다.
여자가 가본 동굴이라고는 커다랗고 예쁜 조명들이 반짝이는 석회암 동굴이 전부였다.
관광객들과 줄을 지어 들어가면 높은 천장과 시원한 공기에 속이 뻥 뚫리는 그런 동굴들.
그런데 이곳은 들어가기 전부터 무섭고 갑갑한 느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땅굴은 가팔랐고 머리가 닿을 듯 낮은 천장에서는 흙이 부슬거렸다. 만지면 작은 자갈들이 흩어져 내리는 제주도의 화산송이 토양 때문이라고 안내원이 일러주었다.
이런 곳에서는 단 하루도, 아니 한 시간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오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이년이라는 시간이 이십 년 같았을 거야.
여자는 남자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땅굴을 걸어갔지만 사실 마음이 아파 당장이라도 이 곳을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 뒤에서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커서는 여기 들어와 본 적이 없어.
할아버지의 고통이, 아빠의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거든.
여자는 뒤따라오는 남자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곳에서 빠져나와 땅굴의 출구에 다다르자 여자는 숨을 깊이 몰아 쉬었다.
여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흩어져 내려앉았다. 산속에서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한낮의 여름을 채우고 있었다. 바다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산 파란 원피스에는 얼룩덜룩 흙이 묻혀 있었다. 이번엔 남자가 숨을 몰아쉬는 여자의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한참을 호흡을 가다듬던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며 겨우 입을 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남자가 슬픈 눈으로 여자를 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스물한 살, 할아버지가 이 땅굴에 갇힌 나이야. 그분을 비롯해 몇백 명의 청년들이 그 흔한 도구 하나 없이 맨손으로 이 깊은 땅굴을 팠대.
낮이고 밤이고 구분할 수 없는 저곳에서 거의 삼 년을, 상상이 가?
아버지가 다시 저곳에 들어가겠다 했을 때 나는 말릴 수 없었어.
그러다 우리 집에 쌓인 빚이 늘어가면서 결국 포기하고 외면해버리기로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아버지가 파지 않았더라면, 나라도 모든 걸 바쳐 파지 않았을까.
몇 백명의 젊음과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저 땅굴이 저대로 묻히면 안 되잖아. 나라도 알아줘야 하는 거잖아.누군가는 기억해줘야 하는 거잖아. 누군가는.
남자는 마지막 말을 하며 여자에게 기대어 흐느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쥔 채로 그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억울함과 수난을 눈물로 토해내고 있었다.
여자는 그의 등을 연신 쓸어내려주다 언뜻 그에게서 젊은 청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아내와 아이를 보러 갈 생각에 마냥 들떴을 그의 할아버지가 희망에 부풀어 굴 밖에 나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가 온몸이 타들어가는 아픔을 겪었을 때, 그도 지금의 손자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좌절했을까.
이 뜨거운 햇빛을 피해 전쟁을 저주하고, 일본을 저주하다 종래에는 자신을 저주하게 됐을그를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여름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어느 한낮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며 산속을 비추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몇십 년 전 그들에게 이 눈부신 햇살 한 줌을 두 손에 모아 가져다줄 수만 있다면.
그랬다면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고통을 그렇게 겪지 않아도 됐을까.
그랬다면 스물한 살의 어느 청년은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탈진 산길, 어느 땅굴 앞에서 그들은 바닥에 무릎 꿇고 한참을 그렇게 아파했다.
2020.4.15. 오늘의 상상 끝.
*본 이야기는 제주 평화 박물관을 다녀온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제가 참고한 링크를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