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by 김잔잔
오늘 산 로또 네 장 인증. 가족에게 한 장씩 나눠줄 예정! (당첨되면 찾지 마세요)


1.

나는 가끔 로또를 산다.

사실 모두가 알다시피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차라리 머리에 벼락을 맞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조차 "어휴, 어차피 안될 거 그 돈 나나 주지"하며 혀를 차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건 돈이 남아 돌아서 혹은 멍청해서만은 아니다.


2.

로또는 기다리는 행복을 준다.

돈은 없고 행복은 사고 싶을 때(거의 항상 이런 식이지만) 로또는 천 원짜리 한 장으로도 일주일치의 두근거림을 준다. 매주 로또를 사고 매주 여지없이 떨어지는 아빠의 입을 빌리자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으면, 가능한 사야 된다"는 지론에 얼추 들어맞는다. 사실 진짜 부자가 되면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그리 많지 않으니 가난한 지금이 기회다.


3.

오백 원짜리 즉석 복권, 천 원짜리 로또, 이천 원짜리 던킨도넛 신메뉴, 오천 원짜리 딸기 한 박스.


모두 나 같이 가난한 자의 특권이랄까.


4.

아무튼 그래서 매번 '낙첨입니다'라는 결과를 1초 만에 확인할 지라도, 애꿎은 로또를 욕하며 속상해하지 않는다. 애초에 당첨은 보너스일 뿐 나는 일주일치의 설렘을 산 거니까. 이 얼마나 경제적 효용이 높은 소비란 말인가.


출처 : 네이버 '로또' 검색 결과 캡처

5.

토요일 8시 45분이 되기 전까지 나의 달콤한 상상과 설렘은 계속된다.

지난주 기준 7개의 번호를 모두 맞춘 1등 당첨액은 31억이었다. 세금을 떼면 실수령액은 한 20억 근처가 아닐까 싶다. 만에 하나 당첨될 경우를 대비해 내가 뽑아 놓은 질문 몇 개가 있다. 몇 개는 이미 결정 내렸고 몇 개는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천 원짜리 설렘도 이렇게 부풀리면 뻥튀기처럼 커진다)


6.

1) 당첨 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것인가?

과거 무조건 YES! 였던 나와 달리 '생각해보고 적어도 서너 달 후 밝힌다'는 친구의 답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이 수령액을 아는 순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중 얼마를 내게 줬고 남았는지 계산하게 되기 때문에 '받고 서운한' 불상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당첨됐는지 알려주지 않고 총수령액도 비밀에 부칠 거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조동아리를 꼭 참아보리라 결심했다.

엄마, 아빠, 언니 미안. 가화만사성이 먼저 아니겠어?


2) 가족에게 얼마나 줄 것인가?

그들이 브런치를 하지 않아 다행이다. 농담이고 이 질문은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답이 없다. 오늘 생각해본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수령액이 30억 일 때 나 15억. 부모님 10억. 언니 5억으로 나누는 것이다. 언니의 분량이 적어 보이지만 내가 가진 금액에서 부모님의 용돈이 30년간 지출될 계획이므로 이를 감안했다. 매달 두 분께 각각 50만 원씩 30년을 드릴 경우 3억 6천만 원이 소요되는데 나는 이 돈만큼은 믿을 만한데 꼭 묶어두려고 한다. 부모님에게 돌아갈 10억으로는 늘 꿈꾸던 곳에 전원주택도 지으시고 건물도 하나 사시면 좋겠다. (지방 시세로 가능하겠지?)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언니에게 5억은 훌륭한 자본이 될 것이다. 일단은 이렇게 내 멋대로 결정!


3) 돈이 통장에 입금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1) 나는 일단 신세계 백화점으로 달려갈 것이다. '어차피 안 살 거지'라는 눈빛을 받았던 주요 매장들로 달려가 일시불 결제를 하고 싶다. 특히 막스마라 너, 내가 스페인에서부터 자국에서까지 골고루 무시당했던 설움을 400을 웃도는 마누엘라 코트 3벌로 용서하리라. 세 모녀가 나란히 입는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2) 그다음엔 지하로 이동, 과일코너로 직진해서 늘 만져만 보고 살 엄두는 못 냈던 망고를 소쿠리째 살 것이다. 래퍼들아 잘 들어! 진정한 플렉스는 먹는데 십초컷인데 하나에 오천 원짜리 망고를 고민 없이 사는 삶이다.


(3) 마지막으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일을 실행하고 싶다. 보이는 서점에 들어가 눈길 가는 책은 모조리 '구매'하는 것이다. 항상 시간을 들여 책을 골라도 열 개 중 아홉 개는 표지만 깔짝이다 두고 와야 하는 게 제일 아쉬운 일이었다. '책은 빌려보는 것'이라는 아빠의 말도 어린 내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랬던 작은 소녀에게 품에 넘치게 책을 안겨 주고 싶다.


4) 가장 큰 소비는 어디에?

이건 두 말할 것도 없이 집이다. 나는 서울에서 겨우 2년 남짓 살았지만 그간 이사를 5번 했다. 곱등이와 쥐'떼'가 출몰하는 반지하를 거쳐 <집주인-전세주인-월세사는 나>라는 불법거주까지 경험해봤다. 이건 뭐 멀리 인도까지 갈 필요 없이 '서울판 불가촉천민의 실상'이다. 보통 지방에서 평범한 가정에 자란 청춘이 발 붙이고 살 곳이 없는 이 서울에 돈이 생기면 협소 주택이라도 좋으니 월세도 싫고 전세도 싫고 내 집을 갖고 싶다.



7.

다 쓰고 보니 벌써 30억이 어디로 가고 없다.

내가 이 맛에 1일 1상상 프로젝트를 하지 싶다. 오늘도 머릿속에서 나는 서울에 집 한 채를 샀다가, 가족들 통장으로 거액을 쏴주다가, 마누엘라 코트를 입고 활보하는 여인이 됐다.


8.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과연 위 네 가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글 소재를 고민하는 작가분이라면 이참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써 주시면 좋겠다. 댓글에 꼭 유팬 소환해주시는 것, 잊지 마시고!


2020.4.24. 오늘의 상상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특기가 막말인 판사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