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세상엔 사이다가 필요해
언제부터 헤드라인만 봐도 뚜껑이 열리고 복창이 터지는 기사들로 세상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이야기로 돈벌이하는 가짜 언론 탓인지, 실제로 끔찍한 일들이 더 많아져서인지, 둘 다여서인지는 알 수 없다.
오늘만 해도 강간당하고 싶다며 여자인척 가장해 전혀 상관없는 주소로 강간범을 불러들여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친 미친놈의 기사를 봤다.
'미친새끼'
주방에서 찌개가 끓을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본 기사는 한순간에 평온한 기분을 박살 냈다. 수제 쌈장과 된장으로 처음 시도해본 차돌박이 된장찌개가 맛있게 끓여지는 동안, 나는 한순간에 바닥으로 치닫은 무고한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날 그 정도에서 내버려 둘리 없다. 연관 뉴스로 N번방을 이어받은 켈리라는 인간이 1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까지 보자 기분은 그야말로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사방팔방에서 악취가 났다.
그래서 궁금해진 것이다.
한 명의 국민으로서 판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판사라고 해서 기계로 만들어지거나 얼음으로 조각되지 않는 이상 분노에 무감각하진 않을 것이다. 가끔은 심신 미약, 미성년자, 건강문제 따위를 핑계로 드는 가해자의 면전에 대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을 텐데…
그래서 써보고 싶었다.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늘 법전에 입각한 이상적인 판결을 읊고 자리를 떠나는 판사가 사실은 막말이 특기이자 취미라면?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침을 튀겨가며 자유롭게 막말을 내뱉는 판사라니!
1.
사건 A : 본교 학생을 관사에서 수차례 성추행 후 강간미수로 들어온 교장
- 판결 내리겠습니다. 피고인은 본인이 교장으로 근무하는 학교 여학생을 자신의 관사로 불러내 신체 부위를 여러 차례 추행하다 급기야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타 간음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안으로 그 죄질이 극도로 불량한 것은 물론이고,
- 판사님, 정말 아닙니다! 저 새파랗게 어린년이 저를 음해하려고…
- 닥치세요. 피고인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 그게 아니라 진짜 아빠 같은 마음으로 예뻐서…
- 병신아, 상황 파악 안 되냐.
- 네??
- (목을 가다듬으며) 아, 오늘도 판결이 좀 길어지겠네요.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피고인이 자꾸 선고를 잘라먹어서 한 마디 합니다. 한 번만 더 아빠 같은 마음을 들먹이면 피고인을 제 양자로 들여서 평생 동안 강제로 위아래 주물럭거리며 지옥 속에서 살게 해 주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보호자라면 자녀의 안전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격리 조치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형량을 추가하고 양육권은 박탈하겠습니다. 무슨 사람 새끼도 안됐는데 아빠 마음을 안다고 지랄.
2.
사건 B.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30대가 만취 상태에서 일으킨 뺑소니로 피해자 즉사
- 판결 내리겠습니다. 피고인이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허위로 타인을 뺑소니범으로 신고한 점, 이후 피고인의 범죄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반성의 기미가 없는 점, 이미 그전에 3번의 음주 운전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알콜중독으로 인해 치료 중입니다. 여기 진단서도 있습니다!!
- 어쩌라고
- 제발 선처해주십시오. 만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그, 심신 미약 상태였고요. 살인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 캬, 당당하다. 누군 만취하면 제정신입니까? 우리 다 술 마시면 심신 미약 아닙니까? 더군다나 조절하면서 처마실 능력도 없는 놈이 그걸 알고도 만취할 때까지 마셨네요? 나 같으면 한심하고 쪽팔려서 입 밖에도 못 낼 텐데 당당하게 뭔 진단서까지 끊어왔대.
그리고 여태껏 3번이나 음주운전으로 걸리고 또 만취 운전을 한 건데, 어떻게 살인 의도가 없습니까? 이 정도면 살인 날 때까지 마셔보자 작정한 겁니다. 너는 감옥에서 알콜 중독 치료 프로그램해주는 걸 감사히 여기세요.
3.
사건 C. 동급생을 감금하고 집단 성폭행한 미성년자 김양, 박군, 최 양
- 판결 내리겠습니다. 피해자는 오랫동안 피고인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해왔고 결정적으로 16시간의 감금과 일방적인 성폭행으로 인해 현재 일상생활이 불가한 점을 고려해…
- 아니, 애한테 소년원에 봉사시간까지 강요했음 됐지. 무슨 부모까지 손해배상을 해내래!! 당신 판사 맞아?
- 애완견이 똥 싸면 누가 치워요?
- 뭐요? 이게 미쳤나!
- 주인이 치우잖아요. 그니까 손해배상을 니가 안 하며 누가 해. 애초에 똥도 못 가리는 애를 학교에 보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든 게 누굽니까? 안 그래도 미성년자법 솜방망이여서 처벌도 시원찮아 짜증 나는데 부모까지 난리야. 까놓고 말해서 미성년자는 술도 못 먹고 담배도 안 해서 성인보다 뇌도 깨끗하고 머리도 뱅뱅 잘만 돌아가는데 왜 범죄만 저지르면 아기처럼 대해줘야 되냐고. 간악한 범죄를 저지를 순 있지만, 감옥에 가긴 우리 애기 아직 어려요? 지랄.
신랄한 세 개의 판결을 연달아 끝낸 판사가 흥얼거리며 가방을 싼다. 내일은 또 어떤 놈을 만나게 될까? 저녁에 입운동하는 거 잊지 말아야지.
오늘도 시원하게 속에 있는 말 다하고 멋지게 칼퇴합니다!
2020.4.21. 오늘의 상상 끝.
참고 자료 :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형사 판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