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팬클럽은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팬클럽

by 김잔잔

1.

나는 팬클럽이라는 말이 참 좋다. 사랑을 듬뿍 전하고 받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사랑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낯선 이들이 연대하는 공간.

그래서 우리 모두 팬클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흔히 팬클럽을 바라볼 때 경제논리에 입각해 '주기만 하고 돌아오는 건 없는 쓸데없는 짓'이라며 한심한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 벅찬 마음을 베풀어 본 사람은 안다. 도리어 내 마음의 온도가 더 올라가는 것을.


3.

누군가를 아끼고 응원하며 관심을 가져주는 마음이 본인에게 해로울 리 없다. 어차피 인생이란 사랑을 마음껏 주고 싶은 사람을 찾아 떠났다가 사랑을 마음껏 받기도 하는 멋진 여정이 아니던가. 이렇게 바라보면 팬클럽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참 건강한 정서적 상호작용을 나누는 공간이다.



4.

그래서 팬클럽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칭찬에 인색한 이 사회에서 대단한 가창 실력도, 뛰어난 능력도, 거창한 빽이나 아부 스킬도 없이 너무 흔해빠진 우리들에게도 팬이 필요하다. 무대 뒤에서 열심히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도 박수와 함성은 돌아가야 이로써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5.

그래서 오늘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팬클럽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봤다. 자기 이름으로 된 팬클럽 카페 하나쯤은 당연한 세상. 회원수가 2명이든 200명이든 저마다의 팬을 갖고 있는 세상. 모두가 팬클럽의 주인이자, 누군가의 팬클럽 회원이기도 한 세상.

"준이 엄마, 오늘 시장 갈 때
OOTD 좋았어요!"
(*Outfit Of The Day - 오늘의 패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신사장님 출근룩 공유합니다"
"세탁소 용식아저씨 선물 조공 완료! 잘 익은 토마토 좋아한댔죠?"
"지선아, 엄마는 항상 니 팬이다. 내일도 힘내라!"


6.

아, 벌써부터 힘이 나는 기분.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내 팬클럽에 들어가 볼 것이다. 하나 둘 올라온 게시물을 보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지나가는 내가 우연히 찍힌 사진을 보며 한바탕 웃다가 감사의 댓글을 달기도 한다.
어제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어도 좋다. 나는 짧게나마 아침 인사를 남기기도 하고 회원들의 안부를 물으며 마음을 전한다. 마음이 내키면 오늘의 OOTD를 공개하기도 하고 요즘 드는 고민을 나눌지도 모른다.


그러다 심심하면 평소 본받고 싶은 세탁소 아저씨의 팬클럽에 들어가 본다. 파워 워커홀릭인 그의 근황이 어떤지 기웃거리다가 일상을 담은 편한 사진도 구경해본다. 가끔은 집에서 만든 작은 쿠키를 선물하고자 가게 앞에 두었다는 댓글을 살포시 달기도 한다. 어느 비가 내리는 아침엔 '우산 꼭 챙기시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는 따뜻한 응원의 말도 잊지 않는다.


7.

이처럼 베푸는 이도, 받는 이도 충만해지는 사랑을 나누며 지친 이들과 연대하고 싶다.

어쩌면 모두 위로가 필요한 허기진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팬클럽은 뜨거운 등불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8.

그래서 나는 오늘 꿈꿔본다.

나에게도 열렬한 팬클럽이 있으면 좋겠다.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고 싶다.




2020.4.30. 오늘의 상상 끝.


9. (번외)

< 잠시 상상해본 '유팬'의 팬클럽 조직망 >

단연코 믿을 만한 총무를 맡고 있는 엄마. 가장 먼저 팔을 걷어 올리고 갓김치며 시금치 나물이며 앞서서 '조공 준비'에 솔선수범인 그녀를 따라 얼린 시래기, 김부각 등으로 조공을 뒷받침하는 할머니. 여기에 특별한 순간엔 자동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드는 홈마 아빠, 나와 직접 컨택해서 스케줄을 알아내고 공유하는 매니저 언니. 여기 무지 힘이 되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과 지인들까지.

아, 이대로도 완벽!


2020.4.30. 정말 오늘의 상상 끝.

(이로써 한 달간 매일 상상을 올리는 프로젝트가 끝났네요. 거의 8시부터 12시까지 자리에 앉아 쓰던 31일간의 상상이 모두 즐거웠습니다. 제가 해낼 줄이야.. 내일은 후기로 찾아와 시즌 2에 대한 계획을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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