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쓰는 외할머니 이야기
1.
얼마 전, 인터넷에 글친구를 구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유일하게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리는 복닥복닥한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서로가 가져온 글들을 조심스레 바꿔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꾸준한 글쓰기를 위해 몇 가지 규칙을 정해봤다. 그중 하나가 번갈아가며 주제를 내고 그에 맞는 글을 일주일에 한 편씩 쓰는 것이었다.
"주제는 뭘로 할까요? 전 바로 생각나는 게 없어서 그런데 먼저 정해주세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할머니로 하죠."
2.
할머니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길 잃은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글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그 언저리만 뱅뱅 돌며 서성거렸다. 아직 그녀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많은 마음들이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일을 쉬지 않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동시에 당신의 몸은 나 몰라라 하는 고집에 대한 걱정과 답답함. 그리고 종종 맞닥뜨리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사고방식의 황당함 같은 것을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3.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첫 번째 핑계였다면 두 번째 핑계는 추억의 부재였다.
사실 우리 사이엔 글로 풀어낼 만큼의 살뜰한 추억이 별로 없었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어정쩡한 거리에서 서로를 조용히 챙겨주는 정도랄까. 할머니는 늘 꼭두새벽에 일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셨다. 잠깐 틈이 나도 손녀에게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기보다는 엄마와 삼촌들에게 어서 농약을 치고 풀을 베라는 둥 일 이야기만 하셨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엄마의 입을 대신해 말하곤 했다.
할머니, 이제 일 좀 그만하셔요.
편지를 써도 언제나 끝에는 자연스럽게 '올해는 일 좀 줄이시고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그 말이 얼마나 지겨웠을까.
4.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도 마음은 이상하게 이번 주제를 기회로 꼭 할머니에 대해 쓰고 싶다고,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전히 뿌연 안갯속을 헤집는 것처럼 글의 방향은 깜깜했지만 결국 나는 할머니를 주제로 감동적이거나 재밌는 글을 잘 쓸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일단' 써보기로 했다. 손녀로서 내가 아는 할머니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 번 나열해보리라. 나와 아주 가까우면서도 먼 그녀를 나는 얼만큼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번호를 매기면 10번까지나 갈 수 있을까?
그렇게 이 글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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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20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