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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Feb 05. 2024

퇴사를 준비하며(1)

2년 하고 몇 개월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한다.

꽤 먼 거리에 위치했던 회사를 다니던 나는, 무려 3시간씩이나 걸리는 왕복 출퇴근시간에 지쳐가던 찰나였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단 엉덩이부터 밀어 넣고 보는 자리차지 눈치싸움. 앞에 서있는 사람을 가방 손잡이 부분을 슬쩍 뒤로 당겨 버리는 비양심들에. 그냥 온통 총체적 난국의 편도 한 시간 반의 상황이 일차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도착한 회사는, 아침마다 부장 놈과 사장 놈의 컵을 수거해서 직접 설거지까지 하고, 전날 바싹 말려놓은 행주에 닦아 말려 놓는 것까지. 아침 업무 시작전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자, 자기들은 손하나 까딱 하지 않고 컵에 얼룩이 있네 마네. 하는 상황에 현타를 한두 번 느낀 게 아니었다.


거기다 부장 놈은 어찌나 매사 불평과 불만이 많은지, 자기 조금 심사 뒤틀리면 나에게 내 퍼붓는 말도 안 되는 폭언에 어느 날은 창피한지도 모르고 엉엉 울기도 하던 날이 있었다.


하필 또 그땐 대코로나의 시대, 바깥은 춥다며 이직할 곳을 찾아놓고 퇴사 하라며 주변사람들은 만류했지만, 하루라도 더 그곳에서 머물다간 내가 정말 미쳐 버리거나, 아니면 정말 그날 밤 퇴근해서 집에다 번개탄을 비웠거나. 아니면 옥상에서 몸을 날렸을지도 모르지.


당시 나는 여기 아니라도 나 정도의 능력이라면 어디든지 취업이 가능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고 수차례 반려 당했지만, 계속 내는 사직서 어택으로 퇴사에 성공했고 그렇게 꼴랑 6개월짜리 이력 하나 만들고, 다시 차갑디 차가운 무직의 세계로 다시 돌아와 버렸다.


코로나의 여파가 취업시장도 꽁꽁 얼어붙게 했고, 이도저도 안 되겠다 싶어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3개월의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6개를 땄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전산회계 1급, 전산세무 2급, tat2급, fat1급, erp관리사 과목 2개짜리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뭐. 그래도 내가 갈 데가 없겠나 싶어 이곳저곳 많이 넣기도 했다.


다행히도 면접을 보러 오란 연락이 꽤 있었고, 어떤 곳은 거리가 출퇴근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어떤 곳은 복지가 맘에 안 들어서, 어떤 곳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핑계를 대며 당시에 좀 배부른 소리를 했지 않나 싶다.


그렇게 면접 탈락, 혹은 내가 거절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고, 21년 1월 퇴사하고 나와서 3개월은 훈련을 받았다 치면 무려 반년을 그 상태로 지냈다. 통장잔고는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도저히 안되면 쿠팡알바라도 나가라며 남자친구는 내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간절함이 없어 보인다며, 어디라도 들어가서 나중에 일을 생각해야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거  같아 보인다며.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삼복더위를 온몸으로 감내해 가며 땀을 비처럼 흘리며 창고와 포장하는 곳을 카트하나 끌고 왔다 갔다 하는 건  나에게 그냥 죽으란 말과 같았기에, 그래, 어디라도 걸려라. 진짜 끝장나게 다녀볼 테다 하고 그날밤 절치부심마음으로 그냥 마구잡이로 때려 넣은 이력서에 다음날 딱 두 군데서 연락이 왔다.


이렇게 그곳과 나의 연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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