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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Feb 06. 2024

퇴사를 준비하며(2)

퇴사를 준비하며 느끼는 여러 가지 소회들

면접일정이 두 군데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좀 큰 제조업 공장이지만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고, 우리 집에서 거리는 가깝지만 대중교통이 너무너무 열악한 두 곳. 후자를 11시 일정으로 면접을 보았고, 긍정적이 답변을 듣고 3시 일정으로 잡혀있는 전자는 면접취소 요청을 했다.


이게 가장 내 큰 실수였던 거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양다리 걸치기가 조금 미안하다며 비록 떨어지더라도 두 군데 다 보고 두 군데 다 붙으면 골라갈 생각을 했어야지, 날씨도 덥고 멀리 가기 귀찮다며 그냥 무턱대고 첫 번째 면접을 본 곳에 출근 약속을 덜컥 잡고 집으로 룰루랄라.


오빠!!!!! 나 합격했어!!!!!!!!!!!!!!!!!


그날은, 뭐 남자친구도 안도를 하는 눈치였고 뭐. 이리저리 생각 없이 입사일정에 필요한 등본 한 통을 집에서 뽑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한다며 빨래도 하고 대청소도 하고 머리도 자르고. 나름 부산했었다.


첫 출근을 하는 날 먼저 빗자루를 들고 사무실 청소를 시키는데, 좀. 응? 이것저것 물어볼 새도 없다. 그냥 시키는 거 뭐 쓰라면 쓰고 하라면 하고 붙이라면 붙이고. 그냥 대충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남자친구는 첫 출근 느낌이 어땠냐며 물어보는데 좀. 음...


한 시간에 한대 마을버스가 있고, 그 마을버스를 놓치면 편도 5킬로 거리를 걸어서 가야 한다는 거 말고는 아직 잘 모르겠어.라고 했는데, 그 잘 모르는 느낌은 한 달이 돼도 두 달이 돼도 석 달이 돼도, 정말 잘 모르는 하루하루가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일주일 정도 지나 알고 보니 여기는 모두가 가족. 나를 포함한 한두 명 빼고는 모두가 혈연지간 부모 자식, 매형, 친형 아들 딸 기타 등등등으로 얽힌 곳이라 이걸 알고 나자마자 그냥 바로 발을 뺏어야 했었는데, 그때를 놓쳐 버렸지. 내가 발을 뺏어야 하는 정말 정확한 타이밍을 놓친 게 정말 두 번째 실수.


일단 가족들끼리 하다 보니 일하면서 잘해주시고 가족처럼 웃고 농담도 하고 뭐 이것저것 다 좋다 그거지. 그런데 최대의 단점이 있으니, 퇴근하고 나서의 문제였다. 나는 당연히 문제가 없지만, 그날 사장님과 사모님이 퇴근 후, 무슨 트러블이 있었다 하면 다음날 아침부터 차가운 분위기와 화풀이성 고성.


기계가 고장나기라도 하면 현장에서부터 지르는 사장님의 호통소리에 심장이 움찔움찔. 제품의 특성상 용차배송을 해야 할 때, 용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다 싶으면 현장에서 날아오는 온갖 화풀이성 짜증들. 가족끼리 얼레벌레하다 보니, 업무의 분업화도 안되어있고 조금 거추장스럽거나 귀찮은 일들은 언제부턴가 모조리 다 내 책상행.


기존엔 없었던 일까지 만들어 내가며 이미 과부하 상태의 내 책상을 어지럽히는데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저 없을 땐 이거 어떻게 했어요? 없는 일까지 만들어가면서 이러니까 정말 힘들고 바쁩니다.라는 소리까지 하고  하라면 할 것이지 왜 토를 다냐며 끌려가서 혼이 나고 사장님의 호통을 네 시간 다섯 시간 듣고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고.


대표적으로 코로나 사건이 있었는데, 사모님이 코로나에 걸려서 온 직원들한테 전파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도 공포의 두줄을 본 그날. 사무실에 직원은 나랑 사모님 밖에 없고 둘 중에 하나가 빠지면 사무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매일 출퇴근을 시켜줄 것이니 출근해서 일을 하라고 했다.


당시, 자가격리 지침도 무의미해진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몇만 명씩 나올 때라 자가격리 어플 이런 것도 없었고 그냥 문제 생기면 자기들이 다 책임질 것이니 그냥 무조건 출근하라고 못을 박는데 뭘 어떻게 책임지실 거냐고 벌금을 내고 내 신상 명세에 기록이 남는 건 난데 뭘 어떻게 책임지시냐고 쌩까고 1주일 자가격리 했다가 사직서 쓰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 눈칫밥 설움밥을 거의 한 달을 먹었던 거 같다. 잘 못한 것도 아닌데 잘 못했다고 빌고 나서야 사장님도 마음이 좀 풀렸고.


그런데 웃긴 건 자기 자식들이 코로나 확진 나오니 이미 코로나 자가격리 지침도 없어진 판국에 당장집에 가서 쉬라고 어울렁 더울렁 아주 곱게 생각하는데 그건 서운하고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엄마 아빠의 소중하고 귀한 딸인데, 자기 자식들은 몸뚱이가 금덩이고 내 몸뚱이는 그냥 강철바위인가 싶어서. 나 정말 코로나 앓고 육 개월을 고통받았는데.


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매번 다음 달에 관둘 거야 다음 달에 관둘 거야 하다 보니 만으로 2년 하고 6개월을 채웠고, 언제부턴가 내가 조금씩 지쳐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입버릇처럼 정말 퇴사할 거야 언제 퇴사할 거야 말만 하다가 정말 여기를 퇴사해야겠구나 하는 느낌을 정확하게 받은 건 남자친구가  내가 밤에는 선잠을 자다가 깨서 헛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자다 일어나 혼자서 자리에 앉아 전화를 받는 소리를 내고 혼자서 용달차 일정을 이야기하고 혼자서 전화를 걸어 며칠에 입고시켜 드릴까요? 혼자서 이야길 하고 혼자서 너무 분주하게 떠들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 회사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느냐며, 정말 그만두고 싶으면 오늘도 괜찮고 내일도 괜찮으니 당장 그만두라며 나에게 퇴사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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