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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Feb 14. 2024

퇴사를 준비하며 (4)

그럴 거면 프린터기를 왜 사냐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 회사 1년에 프린터 만장이상 쓰는 회사다. 물론 필요한 서류 수백 장? 정도 뽑고 나머지는 제품 나가는 상자에다 한 장씩 넣을 품질보증서니 시방서니 갖다 꼭 한 장씩 챙겨주는데, 그런 서류를 30만 원짜리 무한잉크 프린터기에다 대고 뽑는다면 누가 이걸 믿어줄까.


이것도 원래 사장아들이 하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나한테 밀려와서 문제지. 현장이 바빠지면 나 역시도 바빠지고 힘들어지는데, 내가 하는 고생은 고생축에도 못 끼는 거고 지들이 힘이 들어 부치면 거기서부터 일어나는 짜증과 온갖 화풀이성 폭언은 나한테 다 쏟아진다.


오늘 역시도 그랬다. 현장에서는 프린터물 인쇄 해주라고 난리지. 인쇄물이 1분당 뽑아져 나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처음에 이 프린터기 사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분명히 말했다. 좋은 거 100만 원 남짓한 거 사서,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게 좋은 거라고.


일가족들 하루 식대만 몇십 만원씩 쓰는 데는 하나도 아쉬움이 없는데, 백만 원짜리 프린터에는 왜 그렇게 구두쇠 고집이 남는지... 결국 안돼 안돼 안돼 번번이 내가 올리는 견적마다 안된다고 거절을 하고, 결국은 30만 원짜리 1분에 20장도 안 나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프린터를 샀다.


결국 현장에서 쏟아지는 볼멘소리는 내가 다 감당하고, 지들은 뒷짐 지며 구경만 하고. 차라리 이럴 거면 인쇄소에다 보내자는 말을 하니까 나보고 이런다. 그럴 거면 프린터기를 왜 사냐고.


아니 내가 이럴 줄 알고 이거 사지 말고 다른 거 사자고 했는데, 니들이 거절한 거잖아라고 오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꾹 참느라 오늘 엄청 애를 먹었다. 하필 내가 인쇄물 3종류를 100장씩 걸어놓고 100장씩 걸어놓은 프린터 총 300장을 다 뽑자면 최소 15분 이상 걸리는데, 그 15분을 못 참고 나한테 왜 그리 많이 걸어놓느냐며 난리를 치고 빨리 취소 하라며, 자기 인쇄할 거 7장 있다고 빨리 취소하라며 그 난리를 쳐놓고 난 다음에 나한테 한다는 말이 그럴 거면 프린터기는 왜 사냐고.


아니 너도 뽑지 않냐고, 이럴 거면 좋은 거 사지 왜 이걸 사냐고. 이 다툼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아니 당신이 이거면 된다고 해서 사지 않았냐고 그런다. 아니 내가 처음에 좋은 거 사자고 말한 건 1도 기억 못 하고 내가 꼴랑 30만 원짜리 처음부터 사자고 그랬나. 자기네들이 안된다고 처음부터 난리 쳐놓고선 이제 와서 나한테 왜 이거면 된다고 그래놓고선 이제 와서 안된다고 말하냐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할까.


내가 상식인가? 아니면 자기들이 상식인가? 진짜 중립적으로 물어보고  싶다. 오늘은 너무너무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치닫기 시작하니까 한도 끝도 없다. 오늘 이야기를 남자친구와 하면서 펑펑 울었는데, 자기들 딱 한달도 아닌 일주일 식대만 아끼면 좋은거 사서 한도 끝도 없이 원도 없이 갖다 뽑은데, 꼴랑 30만원 짜리 사서 한 3년쓰고 망가지면 또 그땐 내탓하겠지.


이 회사는 정말 답도 없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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