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받은 억대 연봉자의 사업 도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어릴 때부터 30대 초반까지 나는 노동(일)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노동'이란 신의 저주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자연스레 성경 속 이야기를 접해온 사람으로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악과 이야기'는 나에게 노동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근간이 되었다.
창세기는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며 (기독교 내부에서 믿기로는) 선지자 '모세' (맞다. 이집트 왕자이자 홍해의 기적에 등장하는 그 모세)가 신의 영감을 받아 세상이 만들어진 시기(창세기)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성경을 잘 모르고, 창세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담 또는 하와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후에, 에덴 동산이라는 정원을 만들고 그 안에 '씨앗을 지닌 식물들'과 '씨앗을 지닌 열매 맺는 나무들'을 둔 후에, 이 식물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강을 두신다. (교회 밖에서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인간의 고대 문명의 기원에 관한 당대 사람들의 묘사라고 보기도 한다.)
신은 아담이라는 인간 (히브리어로 '아담'은 사람 또는 남자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마치 단군이,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지도자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인 것과 비슷하다.) 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은 다 취할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고, 그 선악과를 아담에게도 주어 신의 명령을 거역한다. 블로그 첫 부분에 옮긴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이라는 일종의 형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깨뜨린 아담(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형벌이다.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얼핏 보면, 인간의 노동은 형벌이자, 저주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인간의 노동이 저주인지 아닌지가 우리 삶에 왜 중요할까? 그것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에게 '일'이란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행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행위인 '일'을 저주이자 형벌로 바라보며 '일'할 것인지, 아니면 축복으로 바라보고 '일'할 것인지는, 다시 말해 일에 대한 가치관이 어떠한 가는 그 사람, 나아가 사회를 바꿀만큼 커다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중요한 주제다.
신은 가장 먼저 '일'을 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가장 첫 구절이다. 신은 가장 먼저 '창조'라는 일을 했다. To Do List 를 만들고 하나씩 그어가며 일을 했는지까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신은 다음과 같이 순서대로 일했다.
☑︎ 빛을 만들고, 이 빛을 어둠으로부터 분리했다.
☑︎ 빈 공간을 만들었다. 빈 공간의 위와 아래에 물을 두었다.
☑︎ 하늘(빈 공간) 아래의 물들을 한 곳에 모았다. 이것을 바다라고 불렀다. 그 외의 마른 땅을 육지로 불렀다.
☑︎ 땅에게 생산하도록 명령했다. '씨앗을 품은 식물들'과 '씨앗을 지닌 열매 맺는 나무들'을 생산하도록 했다. (그리고 땅은 명령대로 이것들을 생산했다.)
☑︎ 빈 공간에 두 개의 큰 빛을 만들었다. 더 큰 빛이 낮을 다스리도록 했고, 더 작은 빛이 밤을 다스리게 했다.
☑︎ 바다에 큰 생명체들을 만들었다. 새들을 만들고 날도록 했다.
☑︎ 땅에게 또 다시 생산하도록 명령하였고, 가축들을 만들고, 땅을 거니는 여러 동물들을 만들었다.
사람은 신의 형상을 따라 일할 능력을 받았고, 동시에 일의 목록을 받았다.
신은 세상의 창조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한 여러 묶음의 '하위 업무'들을 수행한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이 시점에 신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여기서 말하는 신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 형상 안에 '일'하는 신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어지는 문장 "다스리게 하자"에서 신은 사람에게 다스림의 '일'을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신은 사람을 만들 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부여하였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과업 지시와 함께 사람을 일터(동산)로 파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
이러한 위임과 파견은 앞서 언급한 선악과 사건 및 그에 따른 형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시점, 즉 신이 인간을 처음 만든 시점에 이루어졌다.
신에게 '일'은 즐거움이었다.
신이 인간을 만들기 전 했던 모든 업무들은 곧 '즐거움'과 연결된다. 창세기 곳곳에서 신은 자신들이 창조한 아웃풋들을 바라보며 'It was good.", 'It was good.", 'It was good." 그리고 'It was very good." 이라고 즐거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라는 큰 틀의 일을 모두 마친 후, 적극적으로 쉼을 갖는다. (God had finished the work 라는 표현, 그리고 he rested from all his work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따라서 신은 마치 회사가 신규채용하듯 인력을 만들고 쌓여있는 번잡스러운 일들을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의 즐거움, 그리고 일을 완성한 후의 쉼이라는 즐거움을, 사람에게 제공한 것에 가깝다.
신의 저주는 사람이 아닌 '땅'에 내려졌다.
다시 선악과의 사건으로 돌아가자.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신의 '저주'를 받았을까? 이들은 선악과를 먹은 후 신에게 몇 가지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신의 '저주'만큼은 사람이 아닌 땅에게 내려진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영어로는 "Cursed is the ground because of you."이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죄로 받은 형벌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땅이 먹을 것을 쉽게 생산하지 못하게 됨으로 인해) 매일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 고통스러운 수고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한다는 것이었다.
선악과 이야기가 등장하는 창세기 3장에서 딱 한 장을 더 넘어가면, 창세기 4장에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가인과 아벨'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에서도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받은 형벌은, 그가 경작(일)을 할 때 '땅이 소산을 내지 않'(When you work the ground, it will no longer wield its crops for you.)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가인이라는 사람도 살인에 대한 형벌로서 '일' 그 자체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의 형벌은, 일을 할 때 그 아웃풋이 현저히 적어지거나 아예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위 두 가지 예화를 통해서도, 인간에게 '일' 그 자체가 어떤 잘못의 형벌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성경 속 위의 예화들로 인해 (과거의 나처럼) '일은 곧 저주'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공식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일은 축복이다.
인간을 만들기도 전에, 스스로 일을 했던 창조주를 보라. 그는 각각의 일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무척 즐거워했고, 모든 일을 마친 후에 적극적으로 쉼을 가졌다. 그는 일의 능력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의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일들을, 위임한 자가 제공하는 능력과 인프라 안에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또한 중요한 것은,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신처럼 일의 결과물에 대해 충분히 '즐거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다양한 일들로부터 잠시 멀어져 '적극적인 쉼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관이다. 앞으로도 사업을 준비하며, 또한 훗날 사업을 운영하며 이러한 일에 대한 태도가 스스로에게 각인되고,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2025년 6월 30일(월) 일과를 공유합니다.
- 오늘은 총 5시간의 일과시간을 가졌는데, 이 중 2시간 밖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는 여러 행정업무들 (구직급여 신청을 위한 자료 준비, 전화 상담, 내일배움카드 신청)과 국비 지원을 통해 수강할 수 있는 여러 교육과정들을 살펴보는데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K-디지털 트레이닝이라는 국가 지원사업을 통해서, 산학협력 또는 인증된 교육기관에서 양질의 교육과정을 수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수업을 듣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사업을 갖추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면, 필요한 교육 과정을 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AI에이전트 쪽보다는, 스마트팜 또는 스마트팩토리와 같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엑츄에이터 자동화 쪽 수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내가 광화문 쪽에서 점심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정이 있던터라, 딸이 하원한 후부터 재우는 것까지를 통으로 도맡아 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저녁식사도 하고, 씻기고 양치하고 등등을 해야한다는게 사실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 막상 함께 시간을 보내자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원하고 같이 이마트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장 본 걸로 저녁식사를 하고, 며칠 전 만들어 놓은 드로잉 룸에서 함께 모래놀이도 하고 그림 그리기도 같이 했습니다. 저녁 시간을 다 보내고 침대에 같이 누워있는데, 26개월 딸 아이가 아빠 얼굴을 어루 만지면서 "예쁘다~"라고 하는데 참 행복하더라고요.
- 지난 3주 간에 걸친 아바스쿨을 통해서 아내와의 관계를 조금 더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생긴 후로는 제 시선이 아내보다, 아이에게 확연히 더 많이 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도 더 많이 아내를 보려 노력하고,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