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받은 억대 연봉자의 사업 도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치'에 관해 비교적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가치'를 위해, 수업이나 학점과 전혀 무관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몇 년간 지속하기도 했고, 하루는 성경 책을 읽고는 마음이 움직여 ATM에서 얼마 간의 현금을 뽑아 봉투에 넣고는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면식 없던 낡은 주택들을 한 곳씩 돌아다니며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형편의 가정에 봉투를 전달하며, 내가 품어온 가치에 따라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하려 노력했다.
나의 모교인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계열의 학교로, 많은 학생들이 "Why Not Change the World!" 라는 구호를 품고 살았다. 배워서 남주자!는 구호도 함께 외치며 살았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당시 우리에게 참 설레는 구호였다. 특히나 해외여행조차 한 번 가보지 못했던 나, 한국에서도 가본 곳이라고는 몇 개 도시가 채 되지 않는, 좁디좁은 세상을 살았던 나에게 그 구호는 너무나 원대했지만, 삶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려보자면 또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그런 구호였다.
배워서 남 주냐?라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사회적(?)인 푸념을 뒤틀어, 배워서 남 주자! 고 선포했던 한동대 고 김영길 초대총장님의 말씀. 배워서 나 홀로 갖기에도 팍팍한 세상에서 그걸 또 남을 주자고 외치셨던, 순박하신 고 김영길 총장님의 구호. 그분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울림이 있다.
그런 내가 첫 직장에서, 나름 좋아했었던 다른 팀의 과장님께 들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윤수 씨, 이곳은 가치가 죽은 곳이야. 가치 얘기하지 마."
얼추 10년쯤 직장 생활을 했을 법한 그 과장님의 말 앞에, 나는 그저 이상만을 품고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채 하늘을 붕 떠 날아다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 초년생 같아 보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때때로 내 안에 다른 종류의 울림을 준다.
이제 내가 바로 그 과장님의 연차가 되었다. 그때의 그 분과 동년배가 되어 다시금 그 말을 떠올려 본다. 사회생활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며 '가치'를 운운하지 말라는 과장님의 조언.
그분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분의 지난 10년은 어떤 10년으로 채워졌던 것일까?
그가 사회생활을 통해,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며 체득한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
10년 전 그 과장님의 말씀을 들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순간도 그 말에 동의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반대로 "자신만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라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누군가에게 인생의 조언을 할 만한 사회적인 성취가 있었냐, 또는 그만한 삶의 깨달음이 있었냐 하면 그렇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살아라"라고 누굴 가르칠 자격은 없지만서도 "내 삶이 이랬다"라고 자신 있게 소리칠만한 자신감은 없지만서도) "음.. 그냥 돌아보니..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라는 독백 정도는 할 만한 시간이었다고.
10년 후 나는,
세상에,
아니 아내와 자녀에게,
아니 나 스스로에게라도
충분히 '가치를 중심에 놓고' 지금껏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훗날 언젠가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가치가 죽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그곳에서, 부디 너만은 네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
"네가 품은 가치를 위해 살아가면서, 네가 얻은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네가 귀하게 아껴온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한 선택, 말, 행동으로 인해 너의 세상은 반드시 바뀔 거란다."
과연 나는 이렇게 힘주어 내 삶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
2025년 7월 3일(목), 7월 4일(금), 7월 5일(토)의 일과를 나눕니다.
- 7월 3일(목) 저녁에 아내가 듣고 싶던 강의가 광화문 부근에서 있었습니다. 밤 10시 30분까지 하는 강의이기도 했고, 첫 수업 이후에 2차로 회식이 있다고 했던 터라, 아내가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딸아이와 함께 근처 호텔을 잡고 묵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첫 모임 이후 예정된 2차 회식이 다른 날로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소 풀이 죽었는데, 아내는 충분히 고마웠다며 감사를 전해주었습니다. 여전히 속상한 마음은 조금 남아 있지만, 그래도 불편을 감수하며 응원했던 그 마음이 아내에게 전해져서 앞으로의 강의가 아내의 삶을 더 좋은 선택들로 채워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7월 5일(토)에 교회 영아부 여름성경학교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연극에서 예수님 역할을 했어요. 연극 준비로 7월 4일(금) 저녁 시간은 모두 함께 교회에서 보냈습니다. 예수님 역할을 하며 스스로도 느낀 부분이 있었고, 또 나름대로 해석해 본 장면별 예수님의 모습과 목소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내가 믿는 신앙을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며칠간 이어진 일정들로 좀 피곤했어요.)
- 이제 굵직한 일정들은 모두 마쳤습니다. 최근 AI 관련 스타트업 팀들을 뵙고 있어요. 꼭 스타트업 팀에 합류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합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만남을 가지고 있다 보니,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집니다. 지난 10년간 누군가의 꿈과 목표를 이뤄주는 Enabler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삶이어야 할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한 고민 때문인지, 오늘 같은 다소 추상적이고 센티한 글을 적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그러나 잘 해낼 것을 믿습니다. 제가 지금 꿈꾸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만남이, 삶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22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네요. The LORD will provide. 아들 이삭을 내어드리려던 아브라함의 믿음,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준비한 제물을 대신 제공하셨던 그의 하나님. 그런 그는 The LORD provided, 또는 has provided. 라고 하지 않고, 왜 The LORD will provide 라고 얘기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그 자신이 경험한 신의 어떠함을 후대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받습니다. The LORD will prov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