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spinning 기계 이야기 (3/3)

<권고사직받은 억대 연봉자의 사업 도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by 투워즈

똑. 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둘 사이의 정적을 깨뜨렸다.


"사장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필립은 가만히 시선을 거두며 시계를 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군. 마이클, 우리 대화를 한 번 잘 생각해 보게."


"응. 무척 고마웠네. 필립."

코트를 입고 있는 필립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마이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지금의 이 변화는 10여 년 전 내가 목화작업소를 위해 결단했던 그때보다 더 큰 변화일지 몰라. 결단을 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필립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마이클은 잠시 남아 조금 더 필립의 이야기를 곱씹고 싶었다. 찻잔에 남은 차를 바라보며 마이클은 조금 더 생각에 잠겼다.

'하... 그렇지만 10년 전과 나의 상황도 사뭇 다르지 않은가. 이제는 부양해야 할 가족들도 있고, 두 어린 딸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똑. 똑.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희 사장님께서 혹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십니다. 같이 동행하실지 여쭤보라고 하시네요."

"아 어, 어디를..? 아, 네 가능합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마이클은 서둘러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빠른 걸음이었지만 사무실에 들어갈 때 보았던 바로 그 spinning 기계들이 이제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이 기계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사무실을 나서자 프라이빗 캐리지 안의 필립이 힘찬 목소리로 반겼다.

"마이클, 어서 타게. 같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아. 동행을 청했네."


"고맙네. 그런데 어, 어디를 가는겐가"

"우선 가보면 안다네."


마부는 곁눈질로 내가 착석한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몰았다.


"마이클, 자네는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 도시 외곽의 드넓은 땅을 사서, 지금 작업소의 스무 배는 더 큰 규모로 면화 공장을 세울 계획을 가졌는지 말이야."

"그, 그야 자네가 그간 열심히 돈을 모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그렇지 않네. 내가 10여 년간 열심히 일을 해온 것은 맞으나, 자네도 쉼 없이 달려오지 않았나."


마이클은 10여 년 전 면화작업소를 시작할 당시를 회상했다. 면화작업소를 개업하는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필립 역시 자금이 넉넉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 10여 년 전 필립과 나는 비슷한 상황, 아니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나은 재정 여건 속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10년 간 큰 실수 없이 정말 최선을 다해 사업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필립은 무엇이 달랐을까.'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뒤를 돌아 말했다.


"마이클, 우선 내리지. 차차 설명해 주겠네."


캐리지에서 내려 고개를 들자,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높은 건물이 보였다.

은행이었다.


커다란 문을 열자, 은행 안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이봐!!! 지금 온 세상이 지금 이 기술로 돌아가고 있다고. 이 기술의 담보가치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공장주들에게는 이런 기계를 담보로 큰돈을 턱턱 가져다주면서, 정작 특허까지 있는 이 기술이 담보가치가 없다고 하면 누가 이것이 온당하다고 하겠나!"


허름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성이 직원을 향해 큰 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우리 은행은 더 이상 도움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장차림의 직원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미처 돌아가는군 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 중년의 남성은 큰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힐끗 본 그 남자의 얼굴은 매우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은 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마이클과 필립은 그 남자가 떠난 자리에 앉았다. 필립이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오셨습니까. 사장님. 소란스럽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저 고객은 cotton gin, 그러니까 서인도제도와 미국 남부에서 목화의 씨를 제거하는데 쓰이는 바로 그 기계의 라이선스를 영국에 들여온 사람입니다. 약간의 기술 개선과 함께, 기술 특허, 그리고 라이선스를 담보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데, 비단 우리 은행뿐 아니라 그 어떤 은행도 이런 기술 자체에 담보가치를 부여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미 비슷한 기계들도 많이 복제되어 사용되고 있고요. 열심히 하고 계신 분인 건 알지만, 기술이라는 것 자체를 담보를 해주는 은행은 그 어느 곳에도 없을 겁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 기술로 세상이 바뀌는 건 사실이니까요. 오웬, 그나저나 담보가치 승인은 잘 되었습니까? 지난주에 은행에서 저희 공장을 다녀갔었고, 며칠 전 토지에 관련된 서류들도 모두 인편으로 보냈었습니다."


"네 사장님, 서류 승인 모두 잘되었고 토지 증서와 건물, 설비 등을 모두 합쳐서 15,000파운드로 담보설정이 가능합니다."


'마, 마,, 만 오천 파운드라고!?' 마이클은 너무 놀라서, 필립과 직원을 번갈아 보았다. 마이클은 태어나 처음 듣는 액수의 금액이었다. 마이클 작업소의 숙련된 직원 연봉이 50파운드 정도였으니, 연봉으로만 계산해도 자그마치 300명의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 큰 금액이자, 면화작업소의 몇 십 년 치 수익과 비슷한 정도로 큰 액수였다.


필립은 직원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웬"

이후 몇 가지의 문서들이 오갔다. 마이클은 정신이 아득했다.


'지,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spinning 기계가, 이렇게나 엄청난 것이라는 건가. 기술 자체는 가치가 없어도 그 기술을 통해 생기는 생산성의 변화는 엄청난 파급력을 낳고, 거기에 또다시 엄청난 금액이 쏟아부어지며 그 규모를 키우고 있구만. 이, 이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생겨나고 있군."


마이클은 아득한 상태로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마이클, 이제 일어나세." 마이클과 필립이 은행을 나서자, 새로운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클, 마음같아서는 수 십, 수 백개의 방적기가 돌아가는 새로운 공장도 보여주고 싶네만, 아직 공사조차 시작하지 않았기에 그걸 보여줄 수는 없겠구만. 그러나 마이클, 이미 내 마음, 나의 상상 속에서는 수 백, 수 천대의 방적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네. 여기서 생산되는 면들은 수 십대의 마차를 통해, 직조 공장이나 염색 공장같은 다음 단계로 이동하지. 이전의 면화작업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면직물이 이동할 것이라네. 사람이 5만 시간, 그러니까 약 6년 동안 만들어야 할 면화의 양을 단 6일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에 만들 수 있다면 믿겠나? 말 그대로 하루가 일년 같아지는거지!

이것은 직원의 숙련도나, 직원의 규모를 키우는 일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일세, 그대나 나 같은 사장이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고 부지런하게 일함으로써 얻는 결과와도 결이 다른 얘기란걸세. 그리고 자본은 이미 이러한 변화에 무게를 더하며 더 크고 무겁고, 빠르게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지."


그리고 필립은 나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마이클, 자네의 어제 하루는 어떠했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착하고 부지런하다는 칭찬,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편안함, 자네의 두 자녀들도 자네와 비슷한 교육을 받고 수십년 후 지금과 다를 것 없는 삶 속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당연함 속에서 보내지 않았나."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네. 이 spinning 기계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말이야. 여기는 자네 작업소까지 도보로 15분쯤 걸릴걸세. 자네의 삶의 현장이 담긴 작업소를 향하며 한번 깊이 고민해보게나. 나의 spinning 기계 이야기가, 자네의 내일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몹시 궁금하다네."


필립은 이내 캐리지에 올랐고, 그의 마차는 떠났다. 마이클의 인생을 바꿀 크고 중요한 물음을 남긴 채.


spinning 기계 이야기 (1/3)

spinning 기계 이야기 (2/3)

spinning 기계 이야기 (3/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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