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상담실은 내 아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왕초보 주제 글쓰기 21

by 친절한백쌤

"여보, 얘 데리고 상담 좀 갔다 와요. 미치겠어. 자꾸 울기만 하고!"
산후우울증과 사춘기가 만났다.
울보 사춘기다.
2016년 겨울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원 다녀온 나는 낮에 거실에서 공부방 일하는 남편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방구석에서 막내를 돌보고 있었다.
남편은 집에서 2011년부터 수학공부방을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셋째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다시 육아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셋째는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선물이라고 불렀다. 첫째와 둘째가 계획임신이라면 셋째는 선물이었기 때문.
선물이와 열 살 차이 나는 큰 언니는 어느 순간부터 눈물 바람인 게다.

밤에 자주 깨어나 모유 수유하기에 잠이 부족한 나는 첫째를 바라보니 갑갑했다.
살림과 육아를 같이 하면서 산후조리 중인 나를 돌보는 남편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홧김에 '상담 좀 다녀와!'라고 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남편은 상담받을 곳을 찾아보았다.

그동안 자주 육아서를 읽은 나였지만 내 기분에 따라 아이에게 막대한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되었다.

남편과 큰 딸은 한 시간 가량 의사 선생님과 대화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도 한 듯하다.

"특별한 얘긴 없었어. 결과지 같은 것도 출력해줄 수 없다고 하네. 그냥 의사랑 대화를 나눴어. 하루에 30분이라도 애 이야기를 들어주래. 다음 예약도 필요 없다고 그냥 가래. 5만 원 냈어."

"아 그래? 대화가 필요했구나. 수고했어요. 여보."

전문가가 큰 딸에겐 부모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준 후 큰 아이에게 더 관심을 쏟았다.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큰 딸이 외로웠겠지.

이후로 가끔 학급에서 아이의 마음이 힘들어 보이거나, 친구와 다툼이 있을 때에는 학부모에게 내가 경험한 상담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상담교사가 학교별로 배치되었다.

작년에 코로나19로 인하여 학급운영과 부장 업무를 하면서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나는 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상담 선생님의 공감능력에 고마웠다.
아이들에겐 같은 BTS팬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접할 때면 아이들도 믿고 상담교사에게 놀러 가기도 했다. 상담교사는 자신이 상담한 결과를 담임이나 부모에게도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가 친구와 싸움이 있었는지 상담교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같은 학교 있었음에도 나는 전혀 몰랐다.
내교실에 둘째가 어떤 친구와 놀러 왔길래 잠시 둘이 하는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알게 된 것.

"너 상담실에 왜 갔었어?"
함께 놀러 온 둘째 친구가 내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둘째는 대답은 안 하고 내 눈치를 본다.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으나... 나는 입을 열었다.

"은주(가명)야 상담실에 왜 갔는지는 물어보는 게 아니야~ 상담실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거든. 엄마인 나도 지금 듣게 되었네?"

학교에 상담실이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접근성이 좋다는 뜻이다.

2년 전 학급에서 일이 생겼다. 자세한 것은 블로그에 기록할 수 없지만 그 당시 나는 상담실과 부모님을 연결해 드렸다. 부모님께서 이후 나에게 고마워하셨다.
어느 날엔 아이가 등교거부를 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상담실로 바로 등교케 했다. 상담 선생님이 몇 시간 동안 함께 있어주었다. 그저 지켜보고 토닥해준 상담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큰딸은 중학교 1학년 때 또래상담 도우미를 했다.
상담교사의 일을 돕고 상담실에서 기획하는 행사에 함께 참여했다.
중학생이 되어 학교 이야기를 자주 해주진 않지만 또래상담 도우미 삼총사가 친해 보여 안심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원했다는 것!
아이가 성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상담실은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야. 내 마음을 보여줘도 걱정 안 해도 되는 곳이야.
너희를 위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란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책대로 되진 않는다.
책을 읽어도 그때뿐일 때가 많다.
나는 큰 딸이 태어나자마자 육아서를 구입해서 자주 읽었다.
육아서를 읽는 순간에는 반성도 하고 다짐도 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말들》중 에서
응답하라 1988 드라마 대사가 나왔다.
"아빠가 잘 몰라서 그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어. 아빠도 아빠 처음이니깐...긍께 우리 딸이 쪼까 봐줘~"
이 문장을 보면서 나도 서툴렀고 지금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에서 '아이를 내 감정의 수챗구멍'으로 삼지 마란 구절을 읽은 후 조심하고 있다.
https://m.blog.naver.com/true1211/221603611847

그리고 필요하다면 아이들도 나도 상담실 문을 두드릴 것이다. 상담실은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존재한다.


감사합니다.*^^*